[북적북적]저승에 이변이? ‘대멸종’ 외 신간다이제스트

▶대멸종(시아란 외 지음, 안전가옥)=‘대멸종’이란 공포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늘 자리하고 있다. 공룡을 비롯한 육상 생물종의 75%가 사라진 건 6600만년 전이다. 기후변화와 신의 징벌, 외계인과 AI로 이어지며, 대멸종은 현실과 상상을 오간다. ‘2019년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의 주제로, 수상작 다섯 편을 모은 작품집 ‘대멸종’은 판타지·SF·미스터리 등의 형식으로 상상과 가능성의 세계를 재기발랄하게 그려낸다. 공학박사 시아란의 ‘저승 최의 날에 대한 기록’은 원인불명의 강력한 방사선 제트가 지구를 덮치면서 대규모 재해가 발생, 저승에 대혼란이 야기되는 상황을 있음직하게 그려낸다. 지구 멸종은 곧 저승 소멸과 맞닿아 있다. 40억 인구가 멸종, 지상에 인간이 남아있지 않으면 망자가 윤회전생할 수 없게 되고, 저승을 인지하는 존재가 사라지면서 저승 자체가 사라지게 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에 저승 구성원과 망자들, 지구에 살아남은 이들이 공동수행작전에 돌입한다. 심너울의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한 게임 회사에 서버 개발자로 입사한 주인공이 게임의 치명적 문제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플레이어가 6만5536번의 점프를 하면 서버가 터진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 버그를 조사하던 중 주인공은 세상을 둘러싼 의외의 비밀에 다가간다.

▶세계문학 강의:보르헤스 논픽션 전집6(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남진희 외 옮김, 민음사)=보르헤스가 발표했던 강의, 기사 등의 논픽션을 한데 모은 전집으로 완역돼 나오기는 처음이다. 보르헤스는 생전에 수천 쪽에 달하는 에세이를 남겼다. 당대 작가의 전기, 철학사상, 아르헨티나의 탱고, 민속학, 국가 정치 및 문화 리뷰, 비평, 강의 등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산문을 남겼다. 그의 산문은 상징과 표식으로 점철된 난해한 소설과 달리 비교적 읽기에 부담없다. 보르헤스의 사유가 태동하는 청년기부터 왕성한 지적 활동기인 장년기를 지나 자신만의 소우주를 탄생시킨 완숙기까지 그의 모든 사유의 여정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영국문학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데, 고대 앵글로 색슨 시대 문학부터 20세기 현대문학까지 다양한 문학적 전통을 아울러냈다. 게르만, 스칸디나비아 문학, 독자적인 미국문학도 포함시켰다. 보르헤스는 남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아르헨티나의 두 걸출한 작가 레오폴도 루고네스 시인과 아르헨티나 고유의 시 장르인 ‘가우초 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호세 에르난데스의 시, ‘마르틴 피에로’를 중심으로 남미문학을 먼저 살핀다. ‘불교란 무엇인가’란 좀 특별한 장도 별도로 두었는데, 불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아르헨티나 대중에게 붓다의 탄생부터 대승불교, 선불교, 라마교 등 각 교단과 불교의 우주론, 윤회 등 불교의 정신세계를 알기 쉽게 기술해 놓았다. 그의 방대한 지식과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미래 산책 연습(박솔뫼 지음, 문학동네)=분명치 않은 기승전결, 두서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을 빠르게 쫒아가는 독특한 글쓰기로 낯선 서사를 구축해온 박솔뫼의 일곱번째 장편소설. 소설은 두 이야기가 교차되며 펼쳐진다. 부산의 구 도심에 흥미를 느끼며 쓰고 또 쓰는 작가 ‘나’, 그리고 매일의 날씨와 지나가는 사람들, 주위 사람의 표정과 행동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은 수미가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나’는 부산에서 여행을 하던 중 목욕탕에서 최명환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소개로 오래된 아파트를 월세로 계약한다. 조금은 충동적인 계약에 머뭇거리지만 한 달에 한번 부산의 집에서 글을 쓰자고 마음먹는다. 남포동 일대를 산책하며 용두산아파트, 부산데파트, 아케이드, 옛 유나백화점 건물을 지나가고, 유나백화점 남자화장실에서 1982년 한 대학생이 5월 광주에 관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유인물을 뿌린 사실을 떠올린다. 이어 시선은 근대역사관이 된 부산 미문화원에 가 닿는다. 수미는 할머니와 함께 막 교도소에서 출소한 친척 언니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조금은 불편하고 안쓰럽다. 매일 잠만 자던 언니가 어느 날 친구를 보러 광주에 가야겠다고 말하는데, 어쩌다 수미가 동행자가 된다. 두 이야기는 다른 공간과 시간대에서 일어나지만 어느 한 지점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 지점도 목적지는 아니며 열린 길위에 놓여 있다. 익숙한 것과 문득 낯선 것을 발견하게 되는 산책의 매력처럼 박솔뫼식 낯선 시공간을 만날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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