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이면 정장 한 벌, 이미테이션, 싼 티….’ ‘패션의 메카’ 동대문상가는 두 얼굴의 소유자다. 저렴한 가격과 늘 유행을 선도한다는 매력에도 불구하고 ‘싸구려’ 혹은 ‘짝퉁’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다. 이런 동대문상가 한쪽에서 젊은 디자이너들이 내일을 꿈꾸고 있다. 디자이너로서의 뚜렷한 색깔을 유지하되, 저렴한 가격과 좋은 품질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이들이 오늘도 밤낮없이 뛰고 있다. 불황이라는 직격탄 속에서도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외치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발랄하고 빠르지만 가벼울 수밖에 없는 ‘동대문 패션’의 흐름을 바꿀 반란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9월 서울산업통상진흥원이 ‘신진 디자이너 실전 인큐베이팅’사업을 시작하며 뽑은 8명의 디자이너다. 이들 디자이너는 뚜렷한 자기 색깔을 찾으면서도, 저렴한 상품을 선호하는 고객 사이에서 새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무겁고 어두운 남성복에 발랄한 생기를 주는 김무겸씨
디자이너 김무겸 씨는 이날 캐주얼한 분위기의 하늘색 재킷을 새로 내놨다. 언뜻 보기엔 청바지나 면바지가 어울릴 법하지만, 막상 다양한 바지와 코디해보면 검은색 정장 바지와 입었을 때 가장 멋스럽다. 서울 에스모드 출신이자, 모 유명 패션업체에서 근무했던 김씨는 지난 9월부터 독특한 디자인의 남성복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김씨는 “남자가 입었을 때 오히려 여자들이 더 탐낼 만한 옷을 만들고 싶었다. 허리 라인을 잘록하게 잡고, 다양하고 화려한 컬러를 선택한다”고 전했다. 흰색 바탕에 황토색 얼룩무늬를 넣은 트렌치코트는 제법 쌀쌀한 12월 초까지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바지는 7만원대, 코트는 18만원대에서 시작한다. 김씨는 “원가를 좀 더 낮추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도발과 무난함을 모두 소화하는 신발 디자이너 전중열씨 슈즈 매장 ‘클림트’를 운영하는 전중열(37) 씨는 매장을 크게 둘로 나눴다. 한쪽 코너엔 디자이너로서의 면모를 한껏 자랑할 수 있는 도발적인 디자인의 슈즈들을 배치하고, 다른 한쪽엔 일반고객들을 위해 무난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의 구두를 전시했다.
가격은 도매가 6만~7만원, 소매가 12만~15만원대. 일반 슈즈숍보다 5만~10만원 이상 낮은 가격이다. 전씨는 “일단은 ‘클림트’라는 나만의 브랜드를 알리고 싶었다. 이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일단은 가격 경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윤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라고 밝혔다.
이야기를 담은 주얼리 만드는 주한진씨 주얼리숍을 운영하는 주한진(34) 씨는 디자이너 경력만 벌써 10년째다. 서울 종로 귀금속단지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주씨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디자인에 도전해보고 싶어 이번 프로그램에 도전하게 됐다”고 전했다. 매장 이름인 ‘플라플라(flafla)’는 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연상하며 지었다.
‘액세서리에도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는 디자이너의 욕심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가장 반응이 좋은 제품도 역시 나비 디자인의 목걸이와 브로치. 하얀 나비 펜던트에 꽃잎 무늬 체인을 단 목걸이는 도매가 5만8000원, 까만 나비에 모던한 은색 체인을 단 목걸이는 4만8000원이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핸드프린팅 셔츠를 디자인하는 이순철씨 핸드프린팅 전문 디자이너숍도 아직은 척박한 풍토지만 알찬 실험을 하고 있다. 이순철(48) 씨는 파리 홍콩 등 해외 전시회와 국내 전시회를 통해 서서히 브랜드를 알려가고 있는 핸드프린팅 전문 디자이너다. 동료 한 명과 함께 작품을 제작하는 이씨는 그레이ㆍ블랙 등 무채색 티셔츠에 손으로 직접 그린 무늬를 넣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이렇게 만든 수작업 티셔츠는 도매가로 단돈 4만5000원. 이 정도 가격에 과연 이윤이 남을까 의문스러울 정도다. 이씨는 “해외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어 일단 자신만의 사무실과 거점을 잡고 싶었다. 고심 끝에 선택한 곳이 바로 동대문이다. 점잖고 럭셔리한 청담동이나 압구정보다 패션의 메카이자 첨단 유행을 실감할 수 있는 동대문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김윤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