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PD는 4년전부터 ‘정도전‘을 구상했지만 드라마로 방송되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전했다.
“정통사극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기존의 사극 트루기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 구조를 미니(시리즈)스럽게 가보자고 했다.”
‘정도전’은 정통사극의 침체기속에 출발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뭔가 다르게 만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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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병택 KBS 드라마 `정도전` PD |
“그동안 나이드신 시청자분 위주로 만들어온 면이 있다. 이렇게 안주해온 부분을 바꿔야겠다고생각했다. 채널 이미지나 시청연령대를 조금 내릴 필요가 있었다. 젊은 시청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이야기 진행을 빠르게 했다. 너무 빨라 따라오기 힘들다는 부모님도 계셨다. 3회만에 공민왕이 죽었다. 미니드라마 스타일로 빨리 진행했더니 생각보다 빨리 좋은 반응이 나왔다.”
강 PD는 “지금도 진행은 빠르다. 왕자의 난 등 앞으로 남은 분량은 4회만에 끝내지 말고 늘려달라는 말도 있지만, 지금의 시기는 ‘용의 눈물‘때와 겹친다. 쓸데 없이 늘리지 않는다”면서 “그동안 실수라기보다는 관습적으로 늘려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정도전’에는 쉬어가는 국면이 없다”고 말했다.
사극으로서 ‘정도전‘의 또 다른 차별화는 선악 구도가 없다는 점이다. 누구를 응원하면서 따라가는 드라마가 아니다.
“단순 캐릭터가 아니고 모두 주인공처럼 명분을 가지게 한 게 젊은 시청자를 끌어들이게 한 요인인 것 같다. 이인임을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아니다. 선악구도보다는 인물들이 신념을 얼마나 꿋꿋하게 지켜나가느냐에 촛점을 맞춘 정치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정도전’이었을까? 강 PD는 거침없이 대답을 이어갔다.
“‘근초고왕’이 방송되기 전인 4년전쯤부터 정통사극의 위기가 왔다. 정통대하사극은 조선을 주로 다루다 소재의 한계를 느껴 고려로 갔지만, 다시 조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조선의 시작 지점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성계는 이미 ‘개국‘에서 다뤘다. 주인공보다는 서브인물을 뒤집어보면 재미 있었을 같았다. ‘해신’을 연출할때 장보고가 주인공이었지만 염장을 보며 그런 걸 느꼈다.”
강 PD는 정도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용의 눈물‘의 조연출을 할 때다. 정도전(고 김흥기가 연기)에 대한 열풍이 한번 불었지만 곧 사그라졌다. 이 사람을 한번 살려보고 싶었다. 평택에 정도전 후손의 집성촌이 있는데 가묘만 있고, 진짜 묘가 없었다. 종로구청에 집터, 종묘에 정도전 시비 하나 정도만 있었다. 동상도 하나 없었다.”
강 PD는 4년전 일단 신인작가들과 정도전에 대한 작업을 시작했다. 대선에 맞춰 기획해 방송하면 성공하겠다는 느낌도 살짝 들었다. SBS에서 같은 시대를 다루는 ‘대풍수‘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정도전‘을 하겠다고 하자 주위에서 반응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용의 눈물’에서 다루지 않았냐며 다른 아이템을 찾았다. 하지만 이 시대가 주는 매력이 있다. ‘용의 눈물’ ‘태조왕건‘ ‘장희빈’에 제작진으로 참가하면서 정치를 다루고 싶었다. 과거에는 정치는 정치인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강했으나 이제 정치는 ‘생활정치‘다. 내가 정치에 참여하면 생활이 바뀐다. 정치란 신념과 신념의 부딪힘이다. 정치의 중요성을 사람에게 일깨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삼십몇회쯤 이성계가 ‘이런 개판 같은 정치’라고 하자 정몽주가 ‘그래도 백성들이 기댈 곳은 정치밖에 없다’는 대사가 나온다.”
‘정도전’에 나오는 ‘도당‘은 오늘날의 ‘국회’와 유사하다. 강 PD는 “도당에서 삿대질을 하는 것은 오늘날 정치를 염두에 둔 것이다. 재미 없을 신인데도 잘 보시더라”고 말했다.

강 PD는 여말선초는 정도전뿐 아니라 시대가 가진 매력이 충분히 있다고 했다. 왕조 하나가 무너지는 난세에 영웅이 생기듯, 그 시대에 영웅이 많다. 최영 이성계 공민왕 우왕 창왕 공양왕 정도전, 이런 분들을 다 팔로우하면 좋을 것 같았다. 각자 신념과 이상이 달랐다. 이들을 설득력 있게 잘그린다면 좋은 드라마가 될 것이다. 가령, ‘황금 보기를 돌 보듯 하라’고 알려진 최영 장군을 어떤스타일로 그릴까 하는 고민이었다.
“최영이 답답하게 느껴진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 분은 그럴수밖에 없었다. 인물들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내느냐가 완성도의 관건이다. 정몽주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정도전과 친구였지만나중에 적이 된다. 하지만 정도전은 위화도 회군을 반대하지 않았고, 반혁명파도 아니었다. 정몽주는 위화도 회군후 9공신중에 이름이 올라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들과 적이 되느냐? 설득력을 주기위해 정몽주는 역성혁명을 반대하는 대신 창왕에서 공양왕으로 바꾸는 작업에는 자신이 가장 먼저 앞장섰다.”
강 PD는 ‘정도전‘이 좋아서 시작한 사극이었지만 고통스러운 게 많았다. 남들은 “사료를 엮으면 그냥 이야기가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막상 그렇지가 않았다.
“징검다리는 있지만 폭이 너무 넓고, 바위가 모가 나있어 밟고 넘어가기에 불안했다. 부드럽게 넘어가려니 힘들었다. 역사를 훼손하지 않고 말이 되게 전달하는 게 관건이었다. 사대(事大)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그때는 역학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걸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면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캐릭터들의 부딪힘, 권력끼리의 부딪힘, 삶과 죽음으로 부딪힘의 논리를 잘 풀어야 했다.”
‘정도전‘에는 구습을 타파하려는 신진사대부안에 ‘고려 개혁파’(정몽주, 이색)가 있고, 정도전 같은 혁명파가 있다. 혁명파내에도 조준과 같은 온건파가 있고 정도전 같은 급진 성향 인물도 있다. 하륜 같은 신진사대부지만 그만의 길을 가는 독특한 인물도 있었다. 재밌는 요소가 많았다.
하지만 캐릭터를 풀어나가고,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작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역시 이성계와 정도전이었다. 이 두 사람들에게 어떤 명분과 주장을 줄 것이냐가 ‘정도전’이라는 사극의 성격을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했다.
“이성계는 홍건적, 왜구 등과 숱하게 난과 전쟁을 치르며 피 흘리며 죽어가는 부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라가 뭔가 구실을 못하니까 이 사람들이 이렇게 당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도전은 민본 정치로 구습을 타파하려 했다. 개성에 있는 몇몇 부류들이 그런 생각을 했지만, 민초의 삶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말로만 바꿔야 된다는 식이었다. 무엇 때문에 바꿔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 정도전이 나주로 유배를 가며 그곳 부곡마을의 천복이와 부딪히는 것은 민초와 잘 섞이지 못하는 걸 보여준 거다. 당시 백성은 ‘내 나라가 북원이 됐던, 고려가 됐던 상관없다. 고려가 해 준 게 뭔데. 고려밑에서 백성 못해먹겠다‘는 분위기였다. 정도전이 국가가 국가로서의 역할을 다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흔히 실패로 끝난 인물은 사극 소재로는 환영받지 못한다. 강 PD는 “성공한 사람을 다루는 게 더 좋을 수 있지만, 정도전은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긴 게 많다”고 했다.
“아는 게 많아도 실천을 해야 의미가 있는 거다. 실천하는 지성이라고 하지 않나. 정도전이 그런표본이 아닌가 생각한다. 액션을 취하고 제도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다. 정도전이 정쟁에 휘말려 죽은 인물이어서 낮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도전은 신념이 꺾이지 않도록 노력했다. 방원이 아닌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는 편에 선 것도 방석이 옳았다고 믿었던가치체계, 신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도전의 뿌리는 남아있다. 실패라 할 수 없다. 물론 후에 사림에 의해 변질됐지만, 태종조차도 정도전 따라하기를 했다. 정도전은 유가외에도 정치,법제, 진법, 음악, 미술 등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강병택 PD는 “정통대하사극의 침체가 안타까웠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사극, KBS만이 하는 사극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쉬운 게 아니었다. 글쓰기가 힘들다. 조금만 잘못되면 고증이 틀리니 마니 한다. 작가가 대본을 쓰는 것보다 사료에 매달리는 게 더 힘들 때도 있다. 그래서 다른 곳, 퓨전으로 가는 경향도 있다”면서 “하지만 KBS까지 그렇게 해야 하나? KBS가 시청료를 받고있는 한 대하사극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업적인 논리가 아닌 시청자 서비스요 의무다. 그런 점에서 대하사극 부활에 조금이나마 일조한 것 같아 기쁘다”고 전했다.
하지만 강병택 PD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번 작품을 끝내면 드라마 연출을 안한다는 생각도 했다. 시작하기 직전에는 잠도 못잤다. 1회가 나가고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었다.
“내가 잘한 건가? 그 부담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다행히 1회가 나가고 반응이 좋았다. 생각보다 반응이 빨리 왔다. 이렇게 잘 될지 몰랐다. 기쁘면서도 부담이 됐다. 용두사미가 안되도록 해야했다.”
강 PD는 ‘정도전‘을 연출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정도전 관련 기사나 글에 ‘수신료 내는 것 아깝지 않다’ ‘수신료 2배 줄테니 계속 만들어달라‘와 같은 댓글을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대하사극은 빠듯한 제작비에 오랜 기간의 촬영 등 배우와 제작진에게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필요없는 전쟁신은 없앴다. 이야기를 벌리지 않았다. 황산벌 전투와 위화도 회군, 이 두개만 집중했다. 보여주려면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퀄리티를 높였다. 강 PD는 출연료를 많이 주지 못하는데도 흔쾌히 배역을 수락한 배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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