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나려면, 그 분야를 가장 잘 알고있거나, 아니면 아예 모르는 사람이 유리하다. 사극 스타일을 현대화시킨 ‘추노’의 천성일 작가는 그전에는 사극을 한번도 써보지 않았던 사람이다. 해당 분야를 잘 알면 기존 틀에 얽매일 수 있다. ‘정도전‘의 정현민 작가는 사극을 잘 몰랐던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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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정도전’ 정현민 작가 |
그는 퓨전사극은 물론이고 기존 정통사극도 별로 보지 않았다. 학창시절부터 국사와 세계사를 좋아했지만 집안이 어려워 국비로 다닐 수 있는 부산기계공고에 진학해 창원 공단에서 일했다.
나중에 국회의원 보좌관이 됐지만 그는 노동운동가였다. 노동운동을 하며 기자로도 활동했던 그는 특집 시대극 ‘자유인 이회영’과 ‘프레지던트‘를 써본 경험은 있지만 정통사극은 아니었다. 아침드라마 ‘사랑아 사랑아‘에서 이야기를 몰고 가는 법 정도를 배웠을 뿐이다.
정 작가는 ‘정도전’을 기획한 강병택 PD로부터 집필 의뢰를 받았다. 다른 사극전문 작가들은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해 참신한 정통대하사극을 쓴다는 게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터였다.
하지만 정 작가는 ‘정도전‘을 덥썩 물었다. 사극 집필경험은 없었지만 역사적 사실을 따라가는 기존 정통사극 스타일과는 다르게 쓰겠다고 마음억었다. 정 작가는 정도전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잘 몰랐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관련 역사서 7권을 읽었다. 어렵지만 뭔가 될 것 같았다.

정 작가가 지향한 ‘정도전‘은 고품격 리얼 정치사극이었다. 캐릭터의 선악구도가 아니라 논리와 이념의 대결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정치권에 들어가기 전 세상은 선악대결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정치계로 들어가니 주의와 논리의 대결이더라, 싫은 사람중에도 괜찮은 사람이 있더라. 그래서 진정성을 그리고 싶었다.”
이인임을 진정성 있는 악역으로 그리기 위해 공을 많이 들인 것도 그때문이다. “이인임은 적당히 썩어야 정치를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옳지는 않지만 세상을 많아 산 사람은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정 작가는 “여의도에 들어와 보니까 도저히 국회의원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권력의지가 강한 것이었다”면서 “그래서 이인임을 권력의 화신으로 그렸다. 주연인 정도전은 선비라 변화를 주기가 여려웠다. 욕을 하게 할 수도 없고 기껏해야 밥버러지 정도의 말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캐릭터 구축에는 많은 힘이 들었다. 극성을 만들어야 하면서도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대본을 쓰는 작업보다 사료를 보는 게 더 힘들 때도 많았다. 사료 부족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기도 했다. 특히 초반 북원과의 관계, 위화도회군때의 정도전의 역할 등의 주요한 역사 공간에 주요인물들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역사적 개연성과 드라마적 개연성이 따로 놀수도 있었다.
하지만 캐릭터를 만드는 데 정 작가의 실제 경험은 큰 도움이 됐다. ‘정도전’이 “정치하는 사람 이야기 같다. 리얼해보인다”고 하는 것은 정 작가의 정치 경험 덕분이다. “정치의 서열은 두 개뿐이다. 허세와 실세” “의혹은 상대를 감당할 수 있을때 제기하라” 등의 대사는 모두 정치현장에서 목격한 것들이다.
정 작가는 정도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정도전은 조선을 설계한 천재 정치가 겸 유학자라는 후한 평가와 정쟁에 휘말려 사라진 정치가라는 박한 평가가 공존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정 작가는 정도전은 공과가 있지만 과도하게 숨겨진 인물이며 정치가로서 존경받을 지점이 있다고 했다. 역성혁명을 수행하고 민본사상을 퍼뜨리는데 있어 정치가로서 지녀야 될 덕목, 깨끗한 사생활, 새로운 비전 제시, 콘텐츠 기획 능력 등은 정도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근거들이다. ‘정도전‘은 꿈에 대한 이야기로 끝났다. 달성여부에 관계없이 꿈을 가져라는 것이다. 정 작가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꿈의 사이즈는 작아졌다’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말이 확 와닿아 꿈 이야기를 집어넣었다”고 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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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