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데뷔작하면 흔히 떠올리는 어설픔이나 풋풋함 따위는 이 앨범에선 찾아볼 수 없다. 결코 빠른 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루브(리듬감)를 잘 살린 연주는 여느 댄스 음악 이상으로 흥겨움을 준다.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경쾌한 연주의 밑바탕을 들여다보면 치밀한 구성이 자리하고 있다. 프로의 철저한 계산인지 내려놓음의 산물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앨범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트랙은 마지막 숫자에 닿는다. 싱어송라이터 조범진이 음악 인생 20년 만에 발매한 첫 솔로 정규 앨범 ‘비제이 그루브(BJ Groove)’는 양의 탈을 쓴 늑대다. 조범진을 지난 1일 본사 인근 카페에서 만나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조범진은 “오랫동안 음악을 해왔지만 내 역할은 밴드의 일부 내지 누군가의 조력자 역할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라며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온전히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꿈꾼다. 기회가 됐을 때 더 늦기 전에 내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솔로 뮤지션으로서 조범진은 대중에게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가 참여한 작업은 결코 낯설지 않다. 지난 1997년 MBC ‘록 음악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그는 현재 ‘한국록의 전설’ 밴드 사랑과평화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또한 그는 기타리스트 손무현(한양여대 교수),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 이태윤(평택대 교수), H2O의 드러머 장혁(서경대 교수) 등 국내 최정상급 연주자들과 함께 밴드 마스터포(Master4)를 결성해 앨범을 발표해 평단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선희, 김범룡, 빅마마, 휘성 등 인기 가수들의 라이브 무대 단골 세션이었고, 다양한 앨범에 이름을 올린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솔로 앨범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조범진은 “20대 때부터 이미 프로 연주자로서 녹록치 않은 대우를 받은 터라, 그런 생활의 관성에 젖어 내 음악을 해야겠다는 초심으로부터 멀어졌던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하며 “프로듀서와 편곡자로 오랫동안 활동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누군가에게 뮤지션으로서의 나를 설명할 무언가가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고, 더 이상 후회만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앨범에 쏟아 부었다”고 전했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신난다’를 비롯해 ‘심장이 기억해’ ‘아버지’ ‘세상의 빛’ ‘위로’ ‘키위새’ ‘아름다운 그녀’ ‘블라 블라’ ‘혼돈의 날’ 등 11곡이 담겨 있다. 조범진은 블루스와 재즈를 기반으로 록, 솔, 가스펠 등 다양한 음악을 하나의 앨범에 용광로처럼 녹여내며 음악적 내공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또한 그는 앨범의 프로듀싱, 편곡, 노래, 기타 연주, 코러스를 도맡으며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우르며 감싸는 것은 조범진의 탁월한 보컬이다.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힘 있게 내지르는 그의 솔풀(Soulful) 보컬은 싱어송라이터가 단지 자작곡을 직접 부르는 것에 그치는 존재가 아님을 웅변한다.

조범진은 “이 앨범을 특정 장르로 규정해 설명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만, 수록곡 모두 그루브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며 “사람의 마음을 깊게 울리는 음악은 결국 정직하게 손맛과 영혼이 들어간 아날로그 음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앨범에 힘을 보탠 거물급 연주자들 역시 주목할 만하다. 필 콜린스(Phil Collins), 마돈나(Madonna) 등 팝스타들의 앨범과 공연에 세션으로 참여했던 연주자이자 미국 출신 세계적인 록밴드 토토(Toto)의 명곡 ‘아프리카(Africa)’에도 연주로 참여했던 루이스 콘테(Luis Conte)는 일면식도 없던 조범진의 음악에 매료돼 퍼커션 연주를 맡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공연장 ‘할리우드 볼(Hollywood Bowl)의 메인 엔지니어 최경태가 믹싱과 드럼 연주를 도왔다. 미국 최고의 실용음악 대학교로 꼽히는 MI(Musicians Institute)를 수석 졸업한 드러머 강명군, 국내 정상급 재즈 피아니스트 임미정, 사랑과평화의 베이시스트 박태진. 이문세밴드의 키보디스트 신다정, 키보디스트 전영호 등이 지원사격했다. 여기에 케이티 페리(Katy Perry), 비욘세(Beyonce)의 앨범에 참여했던 엔지니어 데일 베커(Dale Becker)가 마스터링을 맡아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다.

조범진은 “몇 년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코리안 뮤직 페스티벌’에 참여했다가 엔지니어 최경태와 인연을 맺어 친분을 쌓게 됐고, 공교롭게도 최경태는 콘테의 절친이었다”며 “내 곡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기꺼이 연주에 참여해준 콘테 덕분에 앨범 제작에 대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조범진은 오는 9월 김완선, 박완규와 함께 미국 투어를 벌일 계획이며, 이후 클럽에서도 라이브 무대를 이어갈 예정이다.

뮤지션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범진은 “자만하지 말고 자신의 음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며 “음악은 기술이 아니라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용기를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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