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그 뜨겁고 위악적이었던 삶, 그의 음악노트엔…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마왕’ 신해철이 끝내 세상을 떴다. 지난 여름 7년만에 돌아와 “지금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며, 음악과 삶에의 강한 의욕을 보였던 그가 갑작스럽게 우리곁을 떠났다.

신해철은 지난 22일 심장정지로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진 뒤, 엿새만인 27일 오후 8시 19분 숨을 거뒀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은 심장정지에 이른 원인을 찾기위해 지난 17일 S병원에서 수술했던 장 부위를 개복하는 수술을 하기도 했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이다. 향년 46세다.

가수 신해철 인터뷰.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늘 죽음을 곁에 둔 뜨거웠던 삶,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삶에의 사랑을 위악적으로 표현했던 ‘이상한 나라의 폴’. 마왕, 그의 삶은 25장의 앨범으로 남았다. 신해철은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룹 무한궤도로 우승하면서 20살에 공식 데뷔했다. 이후 솔로로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신해철이 대중음악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건 록 밴드 넥스트를 통해서다. 음악적 사운드는 물론 90년대 사회시스템의 부조리와 그에 따른 개인의 고통 등 사회적 발언을 거침없이 음악으로 풀어냈던 그에게 이 시기는 뮤지션으로 가장 뜨거웠다.

넥스트의 주제는 그 나이에 걸맞게 ‘나는 누구인가’였고, 이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젊음들을 거침없이 몰아갔다. 당시 신해철은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 대중성과 음악성을 겸비한 몇 안되는 뮤지션이었다. 신해철의 달변과 독설은 답답한 청춘들의 속을 뻥 뚫어주기도 했다. 그가 2001년 형법학의 대가 고려대 김일수 교수와 ‘간통죄 폐지’를 놓고 100분 토론에서 설전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메시지 짙은 음악 화법과 함께 신해철의 독보적인 위치는 실험과 연구를 통한 음악의 새로운 영역 개척에 있다. 신해철은 넥스트를 통해 전통음악과 록의 접점을 시도했고,1997년 넥스트를 해산한 뒤엔 전자음악의 용도를 새롭게 찾아내 기존 발표곡과 신곡을 전자음악으로 편곡해 내놓기도 했다. 윤상과 함께 테크노 음악을 배경음악에서 끌어내 정정당당한 자리를 매김해준 ‘No Dance’를 발표해 화제 불러일으켰는가 하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전자음악과 록을 결합시킨 음악울 내놓는 등 앞서 길을 내는 걸 즐겼다.

7년만에 컴백한 그가 지난 6월에 발표한 정규 6집 ‘리부트 마이셀프’ 의 수록곡 원맨아카펠라 ‘A.D.D.A’(아따)는 그의 실험정신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1000 개 이상의 녹음 트랙에 자신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록밴드 못지않은 입체감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지난 7년동안 ‘창살없는 감옥’인 작업실에서 하루 꼬박 17시간씩 음악적 실험에 몰두했다고 했다.

신해철은 조만간 ‘리부트 마이셀프’ 파트 2를 내놓을 예정이었다. 한때 마약복용으로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던 그는 이제 조카팬들 세대와 얘기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최근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한 건 그 시작이었다. 지금 신해철의 음악노트에는 지난 7년동안 작업한 140곡이 쟁여 있다. 스스로를 재가동, 세상과 새롭게 연결고리를 만들어나가던 그의 작업은 안타깝게 미완성으로 남게 됐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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