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내면 묘사 감정변화 집중
내용 90% 이상 역사적 사실로 채워
누구나 불편한 상처 하나 있지않나
비극을 마주하며 관객 스스로 정화
“상상력을 보탤 이유가 없었지. 사료에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사실 우리도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에서 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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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안훈 기자 rosedale@heraldcorp.com |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서 죽게 한 아버지 영조의 이야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실재했던 비극이다. 줄곧 낮고 어두운 곳에 있는 이웃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내온 이준익 감독(56)이, 이번엔 ‘사도’를 통해 익숙한 역사적 사건에 눈을 돌렸다. 단순히 사건 자체가 드라마틱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이유라면 TV 드라마에서 몇 차례 소환됐던 것으로 충분하다. 감독은 영·정조 시대를 조명하는 콘텐츠들에서 대상화됐던 ‘사도’를 주체화하는 작업에 흥미를 느꼈다. 아무리 진부한 이야기라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덧붙여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카타르시스와 위안을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사도가 성장 과정에서 가진 결핍과 울분이 자라서 울화가 된다. 그런 심정은 관객들이 보기에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그것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불편한 상처 하나 쯤은 가지고 있지 않나?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영화의 가치는 그걸 다른 누군가를 통해 엿볼 수 있다는 거다. 누군가가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는 걸 보며 대리만족이나 페이소스,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가 있다. 그 감정을 통해 관객 스스로 정화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도’는 정통사극을 표방한다. 드라마적 상상력은 최대한 배제하고, 영화 내용의 90% 이상을 역사적 사실로 채워넣었다. 대사도 절반 이상은 실제 사료에 기록된 것을 활용했다. 철저하게 고증에 충실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영조’와 ‘사도’의 이름을 관객의 머리에서 지워간다. ‘왕’의 자리에서 아들에게 학문과 예법과 강요할 수 밖에 없는 아버지, ‘세자’의 무게를 힘겨워했던 아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상(理想)과 가치관이 달랐던 익명의 부자 사이에 빚어진 애증과 비극으로도 볼 수 있다. 활자로 박제된 영조와 사도의 비극적인 운명은, 비로소 생명력을 지닌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이 점을 ‘사도’의 가장 인상적인 성취로 꼽았더니, 감독은 “그게 목표였다”고 미소지었다.
“유교 사상이 통치 이념이었던 사회는 개인에 초점을 두기보다 공동체의 덕목을 강조했다. 개인에 초점을 두지 않은 기록들이 대다수였고. 20세기 근대화는 서양화의 과정인데,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개인주의가 현실화됐다. 그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스타 시스템이다. ‘사도’는 개인들을 통해서 시대를 아우르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을 되새기며 영화를 보기 시작하지만, 보다 보면 개개인의 심리와 감정에 몰입하게 되는 것, 그걸 의도했다.”
영화의 스펙트럼은 영조와 사도 뿐 아니라, 정조까지 3대(代)로 확장됐다. 배우 소지섭이 성인이 된 정조 역으로 특별출연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의 무덤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 앞에서 부채춤을 추는 에필로그는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 정조의 춤사위는 각자 회한을 안고 떠난 영조-사도의 넋을 위로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갈등과 반목으로 고통의 세월을 보낸 주변인들의 응어리를 씻어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참혹한 비극이 남긴 트라우마를, 스스로 극복하고자 하는 결의에 찬 몸짓이기도 하다.
이준익 감독은 “영조와 사도를 통해 정화된 마음을, 정조를 통해 승화시키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덧붙여 그는 “영조와 사도 사이에서 절박하게 최선을 다한 인물들이 있다. 꾸벅꾸벅 조는 어린 세자에게 찬물을 튕겨가며 영조의 사랑을 받게 하려고 노력했던 스승들, 진심으로 영조에게 충정을 고하고 평생 공부한 책을 밟고 올라서서 목을 맨 그런 인물들”이라며 “비극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비극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소신을 전했다.
‘사도’는 익숙한 소재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의 과제도 있었지만, 결말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주인공들의 운명이 정해진 상황에서, 관객은 결론에 다다르는 과정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몰입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2시간의 극을 이끌어갈 수 있는 세밀한 설계가 요구된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가 뒤주에 갇혀 죽기까지 8일의 시간을, 오롯이 영조와 사도의 내면 묘사와 감정 변화에 집중하면서도 밀도 있는 연출에 성공한다.(물론 여기엔 사극의 정형화된 캐릭터에서 벗어난 송강호, 유아인의 연기가 큰 지분을 갖는다.)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 이후 ‘이준익 표 영화’에 따라 붙었던 의문부호를 떼어낸 순간이다.
“난 전쟁 사극을 코미디로 찍어본 사람이다. 말도 안 되는 발상으로 ‘황산벌’을 찍고 적잖은 성공을 하고, ‘평양성’으로 자기복제하다가 은퇴 망동까지 저지르고…(웃음). 그러다 ‘소원’을 찍으면서 치유가 됐고, ‘사도’까지 올 수 있었다. 과거엔 불편한 진실을 가지고 웃겨보자는, 영화적 재미를 추구하려는 의욕이 컸던 게 아니었나 싶다. ‘소원’과 ‘사도’를 통해 불편한 진실을 정직하게 보는 법을 배운 것 같다. 30~40대는 생각이 우선하는 시기였다면, 50대가 되면서 생각보다 마음이 우선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생각 ‘사(思)’ 한자를 보면 마음 심(心) 위에 밭 전(田)이다. 마음에 가지런하게 고랑을 파서 생각을 구현했고, 그 생각 덩어리로 지금까지 영화를 찍었다. 그러다 마음이 있는 밭이 온전하게 가지런하더냐는 의심이 생겼고, 밭 밑에 있는 마음을 다시 쳐다보게 된 거다. 역시 성공보다 실패가 주는 교훈이 크다. 골짜기가 깊어야 봉우리가 높다고 하지 않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