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로 향하는 코미디언들…왜?

개그맨 박성호, 김원효, 김재욱은 지난 16일 부산 윤형빈소극장에서 ‘쇼그맨’이라는 공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TV에서만 보던 개그맨들을 150석 규모의 작은 무대에서 만난 관객들의 반응이 상당했다. “워낙에 인지도가 있는데다 공연 좀 한다는 개그맨의 구성”(부산 윤형빈소극장 김영민 대표)이라는 점이 통했다.

변기수의 ‘뉴욕쇼’. 임혁필의 ‘판타지쇼’, 김기리 김성원 류근지 서태훈의 ‘이리오쑈’, 이광섭의 ‘대박포차’, 김영민의 ‘코미디몬스터19’ ㆍ‘김영민쇼’(11월 11일 오픈)를 비롯해 제주전용관 등 다양한 국내외 공연만으로 활약 중인 옹알스까지 많은 개그맨들이 무대로 향하고 있다. ‘개그콘서트’(KBS2),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 ‘코미디빅리그’(tvN) 등의 프로그램이 코미디언들의 활동창구가 되는 시장에서 TV 밖으로 눈을 돌린 개그맨들의 활동은 인상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의 코미디는 절름발이 구조”(최대웅 방송작가ㆍ‘황금어장’)”로 “방송 중심으로 코미디가 재편되다 보니 유랑극단, 서커스 등 기존의 코미디 장르가 사라졌다”(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고 지적한다. 코미디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서는 ”방송 코미디 중심에서 공연 코미디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정덕현 평론가)는 조언까지 나온다.

코미디언들이 공연 무대로 향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누군가에겐 ‘마음의 고향’이었고, 누군가에겐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자기 개발의 통로’였다.

제약이 없는 무대 위 공연은 개그맨들에겐 저마다의 목마름을 해소해준다. 사실 방송 코미디는 고단한 작업의 연속이다. 매주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는데 코너의 수명은 지극히 짧고, 가족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수위에 대한 제약도 많다. 자신이 꿈꿔온 코미디를 마음껏 발산하는 공간을 찾게 되는 이유다.

류근지는 ‘개그콘서트’ 멤버들과 함께 ‘훈남 개그맨’ 콘셉트로 ‘이리오쑈’를 기획했다. 윤형빈소극장에서 김기리 서태훈과 올랐던 ‘꽃미남 특집’에 김성원이 합류해 지금의 ‘이리오쑈’가 완성됐다. 류근지는 “방송을 하면서도 연습생 시절 몸 담았던 무대가 항상 그리웠다”며 “방송에선 15세 등급 수준의 코미디를 짜지만 무대에선 우리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코미디를 한다는 점에서 훨씬 자유롭다”고 말했다. ‘이리오쑈’는 네 사람이 ‘개콘’에서 선보였던 기존 코너들에 살을 붙여 확장된 공연이다. 방송에선 할 수 없는 19금 요소부터 관객을 무대로 불러들여 함께 호흡하는 다양한 상황이 연출된다.

‘웃음을 주는 일’도 결국 ‘먹고 사는 일’이다. 갈증 해소보다 더 현실적인 것은 생계유지 문제였다.

현재 방송3사의 코미디 프로그램엔 각 10여개의 코너가 무대에 오르는데, 개그맨의 숫자는 이보다 넘친다. 코너 구상에 몰두하나 TV엔 얼굴 한 번 비추지 못하는 개그맨도 숱하다. 매주 치열한 내부경쟁으로 피가 마른다. 안철호 SBS PD는 ”‘웃찾사’에도 150명 가량의 개그맨들이 있다. 이들 모두가 매주 방송에 출연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하는 구조”라며 “방송을 할 때는 괜찮지만 쉴 때가 문제가 된다. 아주 많진 않더라도 고정 수입원이 필요한 개그맨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 개그맨은 실제로 “커튼콜에라도 얼굴을 비춰야 출연료를 가져가는데, 그것마저 없으면 고정수입원이 사라진다. 개그맨 사이에도 빈익빈부익부 격차가 심하다. 생계 유지를 위해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개그맨은 ”한 때 개그맨들이 돈을 모으면 너도나도 사업을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방송활동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방송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열심히 한다고 순서대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히트작은 하늘에서 내는 것이기에 개그맨들에겐 늘 불안과 위기감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공연 무대가 대단한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지만 숨통을 틔워준 측면은 있다. 국내 개그맨 최초로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서고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등 해외 유수 무대에 선 옹알스의 출발도 그렇다. KBS(조수원 조준우 채경선)와 SBS(최기섭) 공채 출신의 4인조로 시작했던 옹알스 역시 방송활동이 여의치 않던 시절 공연 쪽으로 눈을 돌렸다. 8명으로 팀을 키우며 현재의 자리에 오기까진 9년의 시간이 걸렸으나, 공연 무대를 꿈꾸는 후배들에겐 이정표를 제시하는 선배가 됐다. “옹알스 선배들이 하는 것처럼 우리만의 콘텐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공연을 기획했다”(류근지)는 후배도 나온다.

출발은 각기 달랐을지라도 개그맨들의 무대 진출은 스스로가 콘텐츠의 주인이 된다는 점에서 “자기개발을 위한 미래 투자”(안철호 웃찾사 PD)라는 시각이 많다.

공연 무대는 개그맨들에게 “자신의 연기를 다지는 밑거름이자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창구”(이재우 PD)가 되며, “스스로의 능력을 평가받고 연기뿐 아니라 기획, 연예계 다른 분야로의 재능을 발굴하는 자리”(안철호 PD)가 된다. “방송과 제작진을 떠나 자유롭게 자기 콘텐츠를 만들어 100% 자기 능력으로 승부”(안철호 PD)하기에 “코미디언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최신화 요시모토 흥업 대표) 공간이 된다. 방송사 입장에선 “신인발굴을 위한 통로”(이재우 PD)이기도 하다.

개그맨들에게 ‘자기 콘텐츠’를 가진다는 것은 큰 매력이다. 한 개그맨은 “방송 출연 코미디언의 경우 자기개발에 대한 부담이 없어 같은 개그를 반복하는 사례가 많다. 일부 개그맨은 마이크를 잡고 웃겨보라고 하면 30분을 버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꼬집었다. 일본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요시모토 흥업의 최신화 한국 사무소 대표는 “공연을 통해 자기 콘텐츠를 만들면 보여줄 수 있는 무기가 많아지고”, 단독공연의 경우 “관객와의 직접 소통과 대화로 진행능력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윤형빈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개그맨 김영민은 “공연 코미디는 불확실한 개그계에서 단명하는 코너가 아닌 장기화할 수 있는 자체 콘텐츠를 확보해 자신의 것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특히 코미디 업계는 부가시장이 크다. 공연을 통해 실력을 쌓아 강연, 각종 행사를 진행하는 등 활동범위도 넓힐 수 있다”고 봤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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