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음악예능’ 전성시대다. 현재 방송 중인 음악예능들은 저마다 차별점을 강조하지만 ‘음악’이라는 소재, ‘대결’이라는 구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엇비슷해 보이는게 사실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엔 MBC ‘일밤-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과 SBS ‘일요일이 좋다- 판타스틱 듀오(이하 ’판듀‘)’가 동시간대 안방을 찾고 있다. MBC의 금요일 밤 예능 프로그램 ‘듀엣가요제’와 ‘판듀’는 일반인 실력자를 찾는 방식만 다를 뿐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부른다는 설정이 동일하다. SBS의 화요일 밤을 책임지는 ‘보컬전쟁: 신의 목소리’는 일반인 실력자와 가수가 등장해 대결을 벌인다. 기시감을 떨치기 어렵다. ‘듀엣가요제’, ‘판듀’, ‘신의 목소리’ 모두 일반인 실력자 대 가수라는 구도로 요약될 수 있다. 프로그램 진행 방식의 차이일 뿐 방송사 간, 심지어 방송사 내에서도 비슷한 포맷이 반복되고 있다.
음악 예능의 시작은 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였다. 연일 화제가 될 만큼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자 그 후 KBS2가 ‘불후의 명곡’을 내놨다. 공통점은 가수가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 음악 예능 판에 일반인 실력자가 등장한 건 JTBC ‘히든싱어’가 시작이었다. 그 후 일반인 실력자를 필두로 한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이어 ‘신의 목소리’, ‘듀엣 가요제’, ‘판타스틱’ 듀오가 한 달도 채 안 되는 간격으로 등장했다.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도 잊혀진 노래를 되새긴다는 새로운 포맷을 들고 나왔지만 역시 기성 가수가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르는 방식은 달라진 게 없다. 2011년 ‘나가수’에서 시작된 음악 예능은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엇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음악 예능이 조금씩 포맷을 바꿔 베끼기의 서막을 열었다면 육아예능에서 시작된 ‘가족 예능’은 베끼는 걸 넘어 판박이 예능을 줄줄이 쏟아냈다.
아이와 아빠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MBC ‘아빠어디가’는 가족 예능을 방송가의 새로운 트렌드로 올려 놨다. 단 10개월 차이로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편성되면서 전초전이 시작됐다. 이후 SBS ‘오 마이 베이비’가 단 2개월 후에 등장하더니 tvN ‘엄마사람’, TV조선 ‘엄마가 뭐길래’까지 육아 예능의 춘추전국시대를 열었다. 아빠와 아이에서 엄마와 아이로 옮겨갔을 뿐 가족 예능의 포맷은 그대로 가져왔다. 다음달 2일 방송되는 tvN ‘아버지와 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행을 소재로 한 예능이다. 성인이 된 아들이 등장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가족 예능의 또 다른 복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배낭여행을 콘셉트로 한 프로그램인 ‘여행 예능’도 베끼기로 급 물살을 탔다. 가장 노골적이고 단적으로 베끼기가 이루어진 현장도 볼 수 있었다. 2013년 7월 tvN ‘꽃보다 할배’가 방송되자 한 달 뒤인 8월 KBS에서 ‘마마도’라는 프로그램을 내놨다. 복제의 주기는 더 짧아지고 방송가들은 더 두꺼운 철판을 깔았다. ‘꽃보다 할배’가 중견 남자배우들의 해외 배낭 여행기라면, ‘마마도’는 ‘꽃보다 할매’격인 중견 여성배우들의 배낭 여행기를 그렸다. 한달 새 똑같은 프로그램이 고스란히 편성됐다. 이어 tvN ‘꽃보다 누가’, MBC 에브리원 ‘로맨스의 일주일’, JTBC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SBS ‘불타는 청춘’, tvN ‘꽃보다 청춘’, TV조선 ‘100시간의 일탈 여행, 가출한 언니들’까지 ‘여행’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방송가를 휩쓸었다. 시니어들의 여행부터 여성들의 여행, 청춘들의 여행, 우정 여행까지 단어만 몇개 바꿔 넣었을 뿐이었다.
이마저도 식상해졌을 무렵 ‘쿡방’이 도래한다. 셰프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프로그램들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부터 시작해 올리브 ‘오늘 뭐 먹지’, 올리브 ‘올리브쇼2015’, SBS Plus ‘셰프끼리’, JTBC ‘쿡가대표’까지 셰프들이 나와 레시피를 소개하는 포멧이 줄줄이 엮여 나왔다. ‘냉부’와 ‘셰프끼리’, ‘쿡가대표’는 프로그램 포맷뿐 아니라 출연진까지 그대로 가져왔다. 오세득, 최현석, 이연복 셰프 등 채널을 돌려도 같은 얼굴들이 요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먹는 걸 소재로 한 ‘먹방’도 가세했다. 올리브 ‘테이스티로드’, 코미디 TV ‘맛있는 녀석들’, tvN ‘수요미식회’, SBS ‘토요일이 좋다-백종원의 3대 천왕’까지 브라운관은 먹자판이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요리 코너를 진행하던 백종원은 단 한달 사이 채널만 바꿔 tvN ‘집밥 백선생’에도 출연했다. 한정된 셰프 풀에서 요리와 음식이라는 포멧까지 가져와 채널마다, 프로그램마다의 색깔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음악예능, 가족 예능, 여행 예능, 쿡방까지 뭉텅이로 묶고 난 뒤에 남은 프로그램을 살펴봐야 할 정도가 됐다. 트렌드는 분명 존재하지만 도를 지나친 베끼기는 방송가에 ‘다양성’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방송 업계의 한 예능 PD는 “시청률에 압박을 받고 프로그램의 성공을 가장 객관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잣대기 때문에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PD는 아무도 없다”며 “장르나 프로그램을 만들 때 성공의 법칙을 따라 하는 게 여러 가지 기회 비용이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측면도 있고 베끼기 예능이 나와도 모두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전에는 인물 중심 예능으로 스타 MC가 잘나가면 서로 끌어다가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했다면 이제는 비슷한 형식, 소재들을 가지고 와서 지금 트렌드에 편승하려 하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방송사는 리스크를 가지고 가려 하지 않는다며 기득권이 있는 채널일 수록 플랫폼의 힘을 믿고 비슷한 포맷을 가져와 조금 변형하거나 제작비를 조금 더 들여 블록버스터를 만드려는 이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일종의 매너리즘”으로 볼수도 있지만 “하나의 성공한 트렌드에 확 쏠리는 현상이 나오는 건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기 위해서는 가능성을 어필해야 되는데 결국은 성공 사례가 있는 포멧이 편성되기 쉽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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