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준의 타임라인] ‘이게 나라냐’는 포스터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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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짐작하다시피 어수선합니다. 이르게 찾아온 겨울바람이 11월초에도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게 만들지만 을씨년스러운 까닭이 날씨 탓은 아니라는 것 쯤은 멀리 미국땅의 동포들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국민 누구도 어떠한 권한을 주지 않았던 평범한 ‘강남 아줌마’ 최순실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과 어이없는 국정개입 정황이 날마다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 이념과 성향을 막론하고 도처에서 비선의 국정농단을 일삼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를 쏟아내다 못해 상당수의 시민은 멍한 눈길로 아예 말문조차 닫고 있는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됩니다. 극도의 허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고국 나들이를 한 미주동포의 눈길을 붙잡은 것은 지하철 차창에 나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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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빛 포스터입니다. 11×17 사이즈가 채 되지 않은 크기의 포스터는 무궁화를 가운데 둔 채 청와대를 상징하는 봉황 대신 무당이 사용하는 천 조각과 부채 등이 감싸는 문양 아래 ‘이건 나라도 아닙니다’라는 큰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온 나라와 국민을 속였습니다…”로 시작되는 내용은 “재벌들이 뭉칫돈을 갖다바치고 그 대가로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확산, 공기업 민영화와 성과퇴출제를 챙겼다”라며 “이게 무슨 나라냐? 재벌유착 헌정유린의 몸통인 대통령이 즉각 하야해야 한다”고 맺음하고 있습니다. 공공운수 노조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의 이름으로 지난 4일부터 나붙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말을 보내고 나선 7일 아침 그 포스터의 일부는 누군가가 손톱이나 동전 따위로 박박 긁은 형태로 흉해져 있더군요. 그게 공감과 분노의 흔적인지, 포스터를 뜯어내려는 반발의 행위인지 분명하진 않습니다.

다만 포스터의 상채기에서 이번 사태가 ‘빨갱이와 야당의 거대한 음모’라고 웃기지도 않는 억지를 드러내기 시작한 꼴통보수들의 ‘박근혜 지키기’ 조짐을 보는 듯해 은근히 걱정스럽습니다. 세월호 촛불시위가 ‘지겨우니 그만해라’라는 ‘피로감’ 논리로 오도되며 그 의미가 시들어버렸듯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요? 만에 하나 그리되면 대한민국은 정말 나라도 아닙니다. <서울에서>

황덕준/미주헤럴드 발행인

황덕준/미주헤럴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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