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광장] 서울대 ‘국가정책포럼’ 유감

지난 12일 광화문 광장에 100만 시민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과 부도덕성을 비판하는 시위가 있었다. 이에 앞서 서울대 교수 728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모두 1987년 6월의 민주항쟁과 비교되는 최대 규모의 인원이다.

전두환 권위주의 정부 시대에 시민의 결사ㆍ표현의 자유는 극도로 위축됐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항쟁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고려대ㆍ서울대ㆍ성균관대ㆍ이화여대ㆍ전남대 학생들의 목숨을 건 항거가 이어졌다. 1986년 봄, 이 네곳 대학의 교수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권위주의 철폐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 직후 고려대 김용옥 교수가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홀로 낭독하고는 교수직을 내던지는 일이 발생했다. 교수 시국선언에서 소외된 김 교수가 ‘돌출행위’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권위주의 시대에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현재 시점에서는 이해가 쉽지 않을 정도로 어려움이 있었다. 믿는 교수들끼리 입에서 입으로 준비한 선언문을 낭독하고는 곧바로 흩어져 숨는 식이었다.

따라서 선언문이 발표된 후에 “왜 내게는 알려주지 않았는가”라며 섭섭해 하는 교수들도 많았다. 김 교수도 이 경우에 해당했을 것이다. 아무튼 사표가 수리돼 김 교수가 학교를 떠나게 되자 이런저런 뒷말들이 나왔다. 평소에 ‘튀는’ 언행이 많았기로서니 고대가 김 교수 정도도 포용 못하는 수준의 대학이었던가 하는 실망이 지배적이었다.

최근 서울대에 ‘총장직속 국가정책포럼’이 생겼다. 그 포럼의 첫 행사로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을 초청해 토론회를 가졌다. 대학이 상아탑에 안주하기 보다는 현실 사회문제들을 들춰내고 원인을 규명해 해법을 모색하는 일에도 적극 기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일반론에 더해 우리나라의 경우 두 가지 당위성이 더 있다는 지식인 사회의 공감이 있다. 하나는 한국의 ‘압축발전’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집단들 간의 이념적 양극화와 ‘진영논리’ 때문이다. 이들 간의 절충점과 합의점을 찾아 사회갈등 해소에 도움을 주면 좋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역대정부가(심지어 같은 정당이 재집권하는 경우조차도) 항상 이전 정부의 정책을 ‘뒤집기’해 온 때문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지만 국가정책에는 거시적 일관성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대외문제, 대북문제, 교육문제 등 국가정책에 대해 장기적, 그리고 탈정당ㆍ탈진영적 시각에서 전문가들이 국가정책에 대해 열린 토론을 펼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리고 그것을 사회담론 과정에 반영되도록 투입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서울대 ‘포럼’에는 염려스러운 대목이 들어가 있다. 그것이 ‘총장 직속’이라는 점이다. 참여 교수들은 대부분 순수한 목적에서 시작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국가정책은 원초적으로 이념적 특성을 벗어날 수가 없다. 국가정책 대안들이 결코 ‘중립적’일 수 없는 이유다. 학회장들이 임기 중에는 신문칼럼 기고 등을 삼가거나, 부득이하게 쓰게 되는 경우에도 “ㅇㅇ학회 회장”이라는 직함 표기는 꺼리는 이유다.

서울대 ‘포럼’은 뜻을 같이하는 교수들끼리 독립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포럼이 여럿 만들어지고, 각 포럼이 제시하는 ‘중립적인’ 정책대안들을 서로 비교하고 절충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총장은 이런 포럼들을 가리지 말고 모두 지원하면 된다.

실은 이보다 더 총장이 신경 써야 할 일이 있다. ‘튀는’ 언행이나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그러나 훗날 한국의 ‘코페르니쿠스’가 될지도 모를) 특이한 생각을 가진 ‘괴짜’ 교수들을 격려하고 보호하는 일이다. 그런 학자들을 끌어안고 지원하는 곳이 대학이고, 대학이니까 다른 조직이라면 생존조차 하기 어려울 ‘꽁생원들’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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