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은 네트워크 총동원 촘촘한 대응…한국만 ‘조용’

日 ‘인맥쌓기’ 통해 실리 극대화
中은 언론동원 美 압박 등 대처
美 차기정권과 줄대기 나서
‘무정부 상태’ 한국은 손놓고 있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조기이양설’, ‘한반도 핵 재배치설’, ‘한국 무역위기론’… 보호주의와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국 경제ㆍ안보가 흔들릴 것이란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한국은 거의 손 놓은 채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듯 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일찌감치 언론을 동원해 미국 압박에 나서는가 하면, 일본은 재빠르게 ‘트럼프 인맥쌓기’를 통해 실리를 극대화하고 있다.

권력형 지도자를 뜻하는 ‘스트롱맨’(strongman)과 외교관계를 형성할 때 중요한 것은 ‘비선 조직’(비공식 조직)이다. 개성이 강한 권력자일 수록 공식채널을 통해 외교관계를 형성하기보다는 개인관계나 생각에 따라 외교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보안유지의 필요성이나 정치적 민감성을 이유로도 스트롱맨은 충성심 강한 사적 연계망과 비공식 채널을 활용해왔다.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는 이 점을 간파하고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순간 ‘트럼프와 개인친분 쌓기’ 작업에 돌입했다. 아베 총리는 미국을 방문하기 전인 15일 자민당 선대위원장을 만나 17일 성사될 트럼프 당선인과의 회담에 대해 “어떤 인간관계를 구축할 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선 직후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당선인의 인맥을 파악하라는 아베 총리의 지시를 받은 가와이 가즈유키(河井克行) 총리보좌관은 이날 윌리엄 스터드 먼 전 국가안보국(NSA) 국장과 만나 미일동맹 관계를 논의했다. 스터드먼 전 국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외교자문역을 맡고 있는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과 친밀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와이 보좌관은 이날 “차기 대통령(트럼프)과 신속히 최고 수준의 개인적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사적 관계’를 강조해 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외무성 관계자는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아베 총리가 12월 방일하는 푸틴 총리와 일본 전통 온천에서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닛케이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측근의 발언을 인용, “알몸인 상태에서 2명의 중년 남성이 온천에서 문제를 정리하게 된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가 사무적인 공식회담이 아닌 경계가 풀어지는 사적인 자리를 적극 활용해 외교협상을 좀 더 수월하게 벌이려고 한다는 분석이다.

한편, 트럼프와 무역정책을 놓고 갈등할 것으로 보이는 중국은 즉각 언론을 동원해 견제에 나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4일 트럼프 당선인에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를 전하는 동시에 “중국과 미국 관계에서 협력만이 유일하게 옳은 선택”이라며 “중미 협력은 중요한 기회와 거대한 잠재력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공영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트럼프가 중국을 환율조작국 명단에 올리고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물린다면 중국은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구시보의 사평은 중국 당국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때문에 블룸버그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중국 당국이 언론을 통해 트럼프를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환구시보는 트럼프가 중국산 수입품에 45%의 관세를 물릴 경우, 보잉사에 주문한 여객기들을 에어버스로 바꾸고 미국산 자동차와 아이폰, 옥수수 판매 및 수입을 전면 제한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진영에서 미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지지한다는 보도에도 즉각 대응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AIIB는 설립부터 완성까지 국제사회의 큰 관심과 보편적인 지지를 얻었고 AIIB는 지난 1월 운영에 들어간 이래 현재 57개 회원국이 있다”라면서 “이런 의미로 보자면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인 미국이 AIIB에 가입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며 중국도 처음부터 이런 태도였다”라고 밝혔다.

트럼프가 미국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자 중국과 일본이 일사분란하게 비선조직과 언론을 동원하는 이유는 그만큼 미국 대통령이 세계 각국의 대외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또한 트럼프 당선에 각종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문제를 조기에 매듭지으려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마이클 헤이든은 15일(현지시간) 의회전문지 더 힐에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에 대한 안보 압박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한반도에 핵을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에 무역장벽을 높이면 우리나라 경제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도 지적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한국은 사실상 ‘무정부상태’에 빠져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날 유럽연합(EU) 정책위원회는 회원국 간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와는 별도로 기구의 국방 및 외교 관련 예산을 증가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나토 방위비 분담금 재조정 발언과 친(親)러시아 성향, 그리고 이란 핵협상 폐기 공약을 우려해 즉각 대처에 나선 것이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