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관용의 날이지만...] ‘세월 트라우마’부터 ‘순실증’, 끄덕않는 대통령까지…치유되지 못하는 집단고통

- “빽없고 돈 없는데 수능 잘봐서 뭐하나” 무기력해진 고3 교실

- 세월호 사건ㆍ메르스ㆍ최순실 국정농단까지 이어지는 집단고통

- 오만한 정부 대처가 시민들 트라우마 심화시켜

[헤럴드경제=구민정 기자] 최순실(60) 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시민들의 집단무기력증이 사회 전반으로 흐르고 있다. 100만 촛불집회 이후에도 대통령이 ‘잠이 보약’이라고 발언하거나 예정됐던 검찰 조사를 늦추면서 집단고통의 골은 더 깊어지는 양상이다.

[사진=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최순실 국정농단까지 대형 규모의 사건들이 매년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집단 무기력증과 트라우마도 심화되고 있다. 100만 촛불집회 이후에도 대통령이 ‘잠이 보약’이라고 발언하거나 예정됐던 검찰 조사를 늦추면서 집단고통의 골은 더 깊어지는 양상이다.]

수능을 하루 앞둔 고3 수험생들 사이에선 최근 ‘순실증’이 유행이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 씨가 이화여자대학교와 청담고등학교를 입학하는 과정에서 최 씨의 권력을 등에 업고 엄청난 특혜를 받은 의혹이 나오면서 대학입시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많은 고3 수험생들은 “열심히 공부해 수능 잘보면 뭐하나”며 자포자기의 심정을 주위에 토로하고 있다. 수험생들 사이에 ‘공부의 신’으로 불리는 강성태 씨 역시 지난 달 29일 인터넷방송을 통해 학생들에게 “공부할 필요가 없는 나라”라며 “누구는 진짜 꿈을 이루겠다고 공부하고 그러는데 누구는 사기 한 번 쳐서 최고 권력이 돼서 나라를 집어삼켰다”고 말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들도 순실증을 앓는 건 마찬가지다. 고등학생 아들을 둔 장민경(43) 씨는 “요즘 아이들한테 공부하란 소리를 못하겠다”며 “하루는 아들이 ‘돈 없고 빽 없으면 대학 못가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집단고통은 지난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이어졌다.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세월호 특조위’)는 지난 7월, 세월호 사건 피해자 유가족과 생존자 211명을 올 1월부터 6월까지 심층 면접한 결과를 내놨다. 면접 결과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 145명 중 40%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해본 적 있다’고 답했고, 70%는 만성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린다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생존학생 19명중 18명이 불안장애와 폐쇄공포증를 앓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세월호 특조위의 진상 규명 작업 등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는 더 깊어졌다.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조선미 교수는 “지난 시간들이 피해가족들에게는 치유의 시간이 아니라 고통과 불신의 연속이었다”며 “앞으로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이들의 고통은 결코 치유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대형 사건에 대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는 오랫동안 심각하게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같은 사회적 재난을 비롯해 지진, 미세먼지 등 지정학적이고 자연적인 재난 등 다양한 재난재해에 대한 사회적 공포심을 안고 있다. ‘한국심리학회지’에 게재된 ‘재난에서의 집단 트라우마와 지역공동체 탄력성’은 “현대 사회에서 불확실한 재난과 위기를 체계적으로 대비하고 있어야 발생한 재난에 대해 신속하고 기능적으로 복원할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에서 시작된 사회적 재난이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까지 이어지며 이들에 대한 정부의 무능한 대처능력이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에 대한 단순한 위로를 넘어 이들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단원고 생존 학생들과 가족들은 사회 곳곳의 부조리를 고스란히 지켜본 목격자임과 동시에 2차 폭력에 피해 입은 당사자”라며 “이들은 사고 이후에도 학교와 언론 등에 의해 계속해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체계와 트라우마 치료 서비스가 제도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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