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시사 풍자개그들이 해야 할 일

시사 풍자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개그콘서트’에는 지난 해말 폐지된 ‘민상토론’이 부활해 시사 풍자 개그를 보여주고 있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은 정치, 사회 현안을 풀어주는 ‘LTE 뉴스’를 다시 시작한다. ‘웃찾사’의 ‘내 친구는 대통령’ 코너도 6개월만에 부활된다. 코미디 뿐만 아니라 예능과 심지어 드라마에서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단어들이 자막과 대사에 자주 등장한다.

갑자기 시사 풍자가 전성시대를 맞게 된 것은 표현의 자유와문화적 다양성과는 별 관련이 없다. 표현의 자유를 불편하게 여겨온 정권의 검열이 작동하지 않는 짧은 틈을 타 갑자기 ‘해방’을 맞은 것뿐이다. 


그래서인지 시사 풍자 개그가 기존 권력과 기성 권위를 잘 비틀어 풍자와 해학으로 다가오지 않고, 그냥 jtbc ‘뉴스룸’을 옮겨놓은듯한 수준의 조악한 코미디도 있다. 문화적 처리과정이 생략된 듯한 느낌도 든다. 호통개그가 풍자개그는 아니다.

갑자기 외압과 검열이 사라진데서 터져나오다 보니,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시사개그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죽은 권력을 대상으로 비슷한 풍자와 패러디들이 계속된다면 ‘재미가 없어’ 다시 구조조정될지도 모른다.

풍자와 패러디의 기능을 정확하게 안다면 정권이 그것을 불편하게만 생각할 게 아니다. 탈춤과 같은 마당극은 양반 등 지배층의 권력과 권위를 비꼬고, 실컷 조롱한다. 그래서 답답하고 억눌렸던 백성들이 그 시간만큼이라도 시원한 감정, 요즘 말로 하면 ‘사이다’를 느껴보는 것이다. ‘고구마’를 많이 먹어 막혀있는 곳에 ‘사이다’를 부어넣어주는 행위, 그것은 결국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코미디는 정치 시사를 포함해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부분이 소재가 되어야 한다. 실종된 풍자를 되찾은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로 자유를 누리게 된 시사풍자개그가 단명하지 않기 위해서는 문화적으로 좀 더 세련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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