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일간의 세계여행] 134. 역사?문화?예술 숨쉬는 관광도시, 말라가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Andalusia) 지방은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지브롤터 해협을 경계로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요지다. 로마 문화뿐 아니라 이슬람 지배하에 있던 역사의 흔적으로 특유의 이슬람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따뜻한 겨울을 보내려는 북유럽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특히 말라가(Malaga)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관문이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러 지도와 가이드를 챙긴다. 관광도시답게 인포메이션은 훌륭하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가야할 곳을 찾는다. 말라가(Malaga)는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유적, 수준 높은 여행 인프라, 아름다운 해변,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의 고향이었다는 예술적 프리미엄까지 더해져 관광하기에 더없이 좋은 도시이다.


말라가의 센트로(Centro)의 라리오스(Larios)거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대리석을 깔아놓은 아름다운 거리에 장미꽃이 장식된 가로등과 고풍스런 건물에 즐비한 대형 매장과 더불어 파란 하늘까지도 이곳이 관광에 특화된 도시임을 대변한다.

타리파에 잠깐 들르긴 했지만 2주간의 모로코여행 후 곧바로 이곳 말라가에 와서인지 이런 풍경에 살짝 주눅이 든다. 길을 걷다가 의류매장이나 화장품가게를 들락거리다 보면 화려한 인테리어의 매장에 비친 거울속의 추레한 내 모습을 자꾸 확인하게 된다. 대도시에서는 많은 사람을 마주치게 되고 수많은 유리와 거울에 나를 비춰보게 되니 나도 모르게 복장에 신경이 쓰인다. ​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어제 왔었던 대성당 앞 광장에 다다른다. 세비야 대성당처럼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그 위에 카톨릭의 성당을 지은 것이라 밖에서 안에서 보아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다만 나의 여정에서 이미 톨레도, 레온, 세비야 대성당은 물론 작은 성당들도 무수히 보았기 때문에 별 감흥이 없을 뿐이다.

고개를 들어 보면 성당의 탑이 하나다. 원래 두 개의 탑으로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하나의 탑만 건설된 것은 재정부족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라 만키타(La Manquita : 외팔이 여인이라는 의미)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대성당에서 나와 피카소 박물관으로 간다. 말라가가 피카소의 고향이라는 것은 모로코에서 만난 마리아의 설명으로 알게 되었다. 마리아와 버지니아가 급조해 준 내 수첩속의 가이드에도 꼭 가야할 곳을 차지하고 있다. 피카소의 유명 작품이 그려진 엽서나 액자를 팔고 있는 거리의 기념품 가게가 작은 피카소 미술관 같다.


열 살 때까지 말라가에서 살았다는 인연으로 2003년 개관했다는 이 미술관은 피카소의 며느리와 손자가 기증한 피카소 초기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의 초기 습작이나 스케치 연습 과정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아무리 천재화가라도 어린 시절의 습작은 습작이다. 일반인의 눈에는 감동 넘치는 대작이 아니라 피카소라는 화가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는 한다.

카테드랄이나 알카사바, 원형극장, 미술관까지도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지나치게 된다. 레스토랑이나 각종 매장은 아름다운 거리 곳곳에 있으니 과연 말라가는 손색없는 관광도시이고 그 때문에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 명소인 것이다.


로마 원형극장 유적 뒤에 병풍처럼 알카사바의 담이 있다. 로마 유적이나 무어양식의 이슬람 유적이 공존하는 모습이 안달루시아 지방을 특색 있게 한다. 지금도 지하에서는 계속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발굴 중이라고 한다.

세비야에서 입장하지 않고 지나치기만 했던 알카사바를 말라가에서 드디어 들어간다, 알카사바는 무어인의 요새로 이곳은 궁전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알카사바 안으로 발을 디딘다. 모로코에서 보았던 이슬람식의 아름다운 정원과 분수가 보인다. 카테드랄이나 로마유적의 풍경이 이슬람의 그림으로 바뀐다. 알카사바의 둥근 문에서 내려다보이는 현대적인 풍경이 이채롭다. 말라가의 알카사바는 다른 곳보다 보존이 잘 되어있다고 한다. 


돌을 쌓아올려 만들어진 견고한 성채와 파란 하늘은 그 옛날 무어인들이 바라보던 풍경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알카사바에서는 말라가 시내와 멀리 항구까지 탁 트인 전경이 보인다. 말라가의 과거와 현재가 한 풍경 안에 오롯이 담긴다. 저 아래에서는 말라가 사람들의 일상이 지속되고 관광객들이 돌아다니지만 지금 알카사바의 정적도 말라가의 현재를 구성하는 한 요소인 것이다.

알카사바에서 연결된 도보용 터널(?)을 지나 다시 센트로의 북적임으로 돌아온다. 아무도 없이 홀로 걷던 긴 터널의 끝에는 화창한 하늘과 혼잡한 거리가 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마리아와 버지니아의 추천명소인 레스토랑 엘삠삐(El Pimpi)로 간다. 어떤 식당일까 싶었는데 막상 와보니 추천해준 이유를 알겠다. 이곳은 말라가에 오면 한 번쯤을 들러야할 유명한 레스토랑이다. 관광객을 위한 식당만이 아니라 현지인들에게 사랑 받는 곳이라 추천한 것이다. 실내와 야외의 테이블만 해도 그 수가 엄청나고 딱히 식사 시간을 가릴 것없이 손님이 북적이며 바쁘게 움직이는 웨이터들을 부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렇게 화창한 날, 이 많은 사람 사이에서 명소의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웨이터는 실내의 한쪽 벽에 2인용 작은 테이블로 나를 안내해준다. 날씨가 화창해 밖에도 사람이 많지만 창밖의 햇볕이 그림처럼 느껴지는 아늑한 조명아래 와인통이 쌓여있는 실내도 운치가 있다.


마리아와 버지니아가 수첩에 적어 놓은 모스카텔(Moscatel)이라는 와인과 음식을 주문한다. 사람들로 가득한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혼자 앉아 식사를 하는 일은 처음 해본다. 엘삠삐에서는 혼자여도 버지니아, 마리아와 있는 기분으로 즐겁게 식사를 하게 된다. 그들이 적어놓은 가이드대로 돌아보고 움직이다보니 아바타가 된 것 같아서 웃음이 난다. 말라가의 어디에 가도 낯설기보다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것 역시 두 스페인 친구 때문이다.

​식당을 나오다 보니 말라가가 낳은 걸출한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 말고 또 한사람의 스타가 있다. 그는 말라가를 너무도 사랑한다는 안토니아 반데라스다. 말라가에 거주하며 언제나 말라가에서 부활절축제를 즐긴다는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저명인사의 사진이 걸린 이곳 엘삠삐의 벽면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공연을 홍보하는지 골목에는 재미있는 분장을 한 사람들이 여행자들을 웃게 만든다.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깔깔 웃게 하는 그들의 사진도 한 장 담는다. 


다시 돌아온 알카사바 입구와 원형극장 앞에서는 한 젊은이가 하프를 연주한다. 말라가의 풍경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함께 한다. 나무 그늘아래 앉아 말라가의 풍경을 즐긴다. 파란 하늘, 따사로운 햇볕, 고풍스런 유적들, 클래식의 선율, 노천식당에 모인 관광객의 시끄러움도 모두 말라가의 것이다. 이 풍경을 혼자 즐기고 있다는 게 유감이라면 유감이다. 시간이 맞아 버지니아, 마리아와 함께 이곳에 왔다면 얼마나 더 즐거웠을까?

알카사바를 배경으로 한 공원마저도 아름다운 말라가, 이곳에 굳이 나를 초대한 스페인 친구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피카소와 반데라스가 태어나난 곳이기도 하지만 이곳은 나에게는 버지니아와 마리아의 고향으로 더 기억에 남을 것이다.

중심에서 비껴난 골목들의 작은 바(Bar)의 금요일 저녁 풍경을 구경한다. 기념품점에 들르고 여행하느라 떨어진 로션도 구입하고 의류매장을 돌아다니며 쇼핑도 한다. 맥도날드에 들어가 와이파이도 나눠 쓰며 버지니아와 연락도 하고 남은 일정도 챙긴다. 시간이 훌쩍 지난다. 너무 늦기 전에 버스를 기다려 집으로 돌아온다. 어제는 못 보던 정류장이 나와서 근처에서 내린 게 화근이 되어 길을 잃은 것이다. 순환 버스라서 내가 탔던 정류장 이름이 나올 때까지 그냥 기다리면 되는 거였다. 낯설던 것들이 이렇게 하나 둘 익숙해진다.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의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운 거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된다.


늦은 점심 때문에 배는 고프지 않아서 음악을 낮게 틀어놓고 맥주를 따라 마시면서 하루를 정리한다. 이제 2주일도 채 남지 않은 여행, 혼자서 무엇이든 잘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슬슬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긴 여행의 끝자락, 만감이 교차하는 시점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준 말라가의 친구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이번 여행에서 스페인은 몇 번을 들락거리는 나라지만 꼭 다시 오게 될 것 같은 예감을 한다. 설거지를 하고 주방을 치우고 방을 정리하고 작은 베란다로 나간다. 현지인 아파트에서의 두 번째 밤이 깊어간다. 역사와 문화와 예술이 숨쉬는 관광도시 말라가(Malaga)는 멋지고 아름다운 도시임에 틀림없었다. 친절을 베풀어 준 친구들이 나고 자란 도시를 여행하는 즐거움은 기대 이상이었다. 사람과의 만남이 여행을 더욱 의미있게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는 중이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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