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영한 수석 폴더폰 복원…세월호 증언 직전 사망

[헤럴드경제]20일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최순실게이트 4탄이 다뤄졌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선 최순실 게이트엔 두 명의 비운의 사망자가 있다고 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사건에 휘말려 자리에 밀려난 뒤 6개월만에 병사를 했고, 최경락 경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앞서 2014년 정윤회 게이트가 불거졌다. 최순실 정남편 정윤회의 국정개입 문건 보고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문건에 따르면 그가 대통령 측근인 문고리 3인방과 관련해 10여 명의 사람들, 이른바 십상시 모임을 통해 국정농단을 했단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문서에서 우리나라 국가 권력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박근혜는 문건 내용을 따지기보다 유출자에 초점을 맞췄다.

문건을 작성한 공직자에 대해 영장이 청구되고, 유출자로 지목된 두 명의 경찰이 체포됐다. 하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 물증만으로 최 경위 등이 문건을 유출했단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 다음날 최 경위는 자살했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해당 문건에 대해 추적했다. 검찰은 2년 전, 십상시 모임이 이뤄졌단 장소로 지목된 중식당에 대해 아무도 해당 장소를 찾은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제작진이 만난 중식당 관계자는 정윤회를 손님으로 여러차례 대접했다고 했다.

전 청와대 관계자는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을 만났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정윤회 관련된 보고를 올렸고 이상한 게 대통령이 별 반응이 없었다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두 차례나 이를 보고 했다. 법원 또한 찌라시가 아닌 비밀문건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이를 반박하면서도 그들의 보고서에는 “국가적 혼란 상태를 불러올만큼 파괴력이 있는 문서”라고 적었다.

전 청와대 핵심 관계자 A씨는 “그때 제대로 수사가 안 이뤄져서 그런다. 2014년 초까진 양 쪽이 주고받으며 싸운거다. 갑자기 김기춘이 조응천 박관천을 잘랐다. 문고리 3인방이 더 센 걸로 본거다”라고 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이 모든 것을 부정한 바 있다. 하지만 A씨의 의견을 뒷받침할 또다른 증거가 있었다. 고 김영한 전 수석은 상관의 국회 출석 지시를 거부했다. 그리고 사퇴한 뒤 1년 6개월만에 사망했다.

제작진은 고인의 모친을 만났다. 모친은 “급하게 술을 마셨다. 급성 간암이 왔다. 김기춘한테도 전해달라. 우리 영한이를 이렇게 만든 거 김기춘, 우병우다. 대통령도 거기 있다. 우리 아들 갑자기 이렇게 가버렸다”고 했다. 모친의 증언에 따르면 민정수석이 된 후 김기춘, 우병우와 갈등이 있었다고. 제작진은 고인이 사용했던 폴더폰 두개를 확인했다. 세월호 청문회 관련 면담요청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이에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세월호 특조위 상임위원과 확인을 했다. 권영빈 상임위원은 “증인 채택하고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가슴 속에 담아뒀다가 와서 (우리에게) 얘기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고인이 증언 직전 사망하며 이는 성사되지 않았다.

국정원은 세월호를 여객선 사고로 보고했고, 문건 작성 시점이 실종자 12명에 대한 수색이 이뤄질 때였다. 대응 방식으로 보수단체를 활용한 여론전을 내세운 정부 문건이었다.

2년 전 이 모든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정윤회 문건이 처음 터졌을 때 검찰이 조사를 제대로 했다면, 대통령이 공범이 되는 사상 초유의 끔찍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청와대 수석과도 독대하지 않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삼성, 롯데, 한진, 한화, 현대, LG 등 대기업 총수들을 독대해 기부를 독려하는 모금 파티의 호스트나 다름없었다. 공교롭게도 기부금을 낸 대기업은 광복절 특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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