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 심층분석했더니…] “최순실 총감독·대통령 민원해결사·관료 심부름꾼”

‘미르·K재단’ 설립·운영계획
朴대통령이 직접 아이디어 제공
崔-安 ‘대통령과 공모하여’문구 9차례
‘대통령’지우면 범죄사실 설명안돼

‘최순실 게이트’로 명명된 이번 사태는 공식 직책도 없는 ‘민간인’ 최순실(60ㆍ구속기소) 씨가 막후에서 국정을 운영했다는 의혹에서 출발했다. 검찰의 칼도 초반 최 씨를 정조준했다.

그러나 검찰이 최 씨와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47)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20일 재판에 넘기면서 제시한 공소장을 보면 대부분의 범행은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다.


검찰은 문제가 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구상과 설립, 운영방안까지 모두 최 씨가 아닌 박 대통령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으로 적시했다.

공소장의 첫 부분부터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두 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재단 자금을 기업들의 출연금으로 충당하기로 계획했다’고 나온다. 이때부터 박 대통령의 측근들은 재단 설립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박 대통령은 최 씨에게 “전경련 산하 기업들로부터 금원을 갹출해 문화 재단을 만들려고 하는데 재단의 운영을 살펴봐달라”고 요청했다. 최 씨는 곧바로 재단 임직원을 자기 사람들로 뽑고, 정관까지 만들며 인사와 운영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설계자였다면 최 씨는 막후에서 행동대장 역할을 한 셈이다.

안 전 수석에겐 ‘10대 그룹 회장들과 일정을 잡으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졌다. ‘재단 이름을 미르로 하고, 사무실은 강남 부근으로 알아보라’는 지시까지 모두 박 대통령을 거쳐 안 전 수석에게 내려왔다. 이후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 사이에서 연락책 및 모금책 역할을 했다. 대통령의 의사를 총수들에게 전하고 재단 모금현황 등을 직접 챙겼다.

결국 박 대통령의 이름을 지우면 재단 설립부터 강제모금까지 일련의 범죄사실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최 씨와 안 전 수석의 범죄사실을 설명하는 공소장이지만 기소 내용 전반에 박 대통령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검찰은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등의 표현을 섞어가며 사실상 박 대통령이 범행을 주도한 ‘주범’ 임을 적시했다. ‘피고인 최순실, 안종범은 대통령과 공모하여’라는 문구는 총 9차례 등장한다.

최 씨의 딸 정유라(20) 씨의 동창생 부모가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이 현대자동차에 제품을 납품하고, 최 씨가 설립한 광고사 플레이그라운드가 70억원 상당의 현대차 광고제작을 수주한 배경에도 박 대통령이 깊숙이 개입해 있었다.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현대차와 잘 얘기해보라’는 취지의 지시와 함께 자료를 건넸다. 안 전 수석은 현대차에 그 자료를 보여주며 사실상 협력업체로 채택해달라는 압박을 가했다.

KT에 최 씨와 차은택(47ㆍ구속) 씨의 지인을 채용하라는 압력 역시 이와 비슷한 수순을 밟아 이뤄졌다. 기업들도 하나같이 ‘세무조사나 인허가의 어려움 등 경영상 불이익을 우려해 청와대의 요구에 응했다’고 주장해 사실상 박 대통령의 직권남용과 강요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김현일 기자/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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