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절대강자 정일미] 교수·선수·예비박사…‘이대 나온 골퍼’ 정일미가 사는 법

“정말 여기(KLPGA 챔피언스투어)에서 많은 걸 배워요.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에요. 자기 존재감, 만족감, 자존감, 뭐 이런 단어들이 투어에 가득해요. 아주 묘미가 있어요. 개인적으로도 내가 사랑하는 골프를 대회에서 아직도 즐길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죠.”

대학교수를 몇 년 하더니 ‘말빨’이 더 좋아졌다.인터뷰가 아니라 강의 같았다. 한때 ‘스마일퀸’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여자골프 정상에 섰고(통산 8승), 2004년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미LPGA에 뛰어들어 7시즌을 치른 정일미(44) 얘기다. 정일미 ‘선수’는 지난 11일 경북 상주의 블루원 상주CC에서 끝난 동아회원권 챔피언스오픈 10차전(총상금 1억원)에서 1타차로 역전 우승했다. 10개 대회에 출전해, 시즌 4승(통산은 6승). 1800만 원의 우승상금을 추가하며 상금왕(총 5568만 5000원)에 올랐다. 지난 시즌에 이어 상금왕 2연패. 평균 타수(70.35타)와 퍼트(30.65개)도 1위였으니, 세계 최강이기도 한 한국여자골프 시니어무대(만 42세 이상)에서 명실상부 최고수가 된 것이다. 


정일미의 공식직함은 묵직하다. 호서대 스포츠과학부 골프전공 전임교수.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교수님이 아니다. 1주일에 14시간씩 80여 명의 학생에게 스윙, 코스공략법 등 골프의 이론과 실전을 가르치고, 진로 상담과 학사 업무까지 맡고 있다. 이번 최종전에서 제자가 캐디를 맡기도 했으니 실력 있는 현장형 대학교수인 셈이다. 정일미는 우승할 때마다 100만 원씩 학교에 기부하고 있다(누계 600만 원).

이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 ‘투잡’인데, 정일미는 한 가지 일을 더 한다. 용인대학교 박사과정 4학기째다. 마침 지난주 9일(수요일) 최종전 첫날 박사과정 종합시험이 있었다. 경북상주에서 1라운드를 서둘러 치른 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용인대로 가 시험을 쳤다. 그리고 다시 밤 12시께 다시 상주로 내려와 2, 3라운드를 소화했다. 그러고도 우승한 것이다.

“사실 일정이 너무 바빠 대회에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대회에 출전하면 아드레날린이 솟는 것 같고 삶에 큰 활력소가 된다. 무리해서 최종전을 나갔는데 운이 참 좋았다. 마지막 홀은 핀도 보이지 않는 오르막 그린이었다. 두 번째 샷을 8번 아이언으로 쳤는데 홀 20cm에 딱 붙었다. 다시 해도 그렇게 못 칠 샷이었다.”

정일미는 오는 23일 박사논문 프로포잘을 한다. 투어를 마치자마자 논문 준비로 정신이 없는 것이다. 논문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자기결정성 이론에 따른 챔피언스투어 선수들의 기본심리 분석’이란다.

확실한 것은 이 ‘이대 나온 여자골퍼’가 40대 중반에 골프와 어울려 참 바쁘게 산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결혼설에 대해 슬쩍 물었다. 이번에도 청산유수 같은 말이 이어졌다.

“흠, 내가 무슨 잘 나가는 젊은 선수도 아닌데 ‘결혼설’이 나와요? 사귀는 사람은 있어요. 스포츠산업경영을 공부하는 학자인데 사람이 너무 재미있고, 괜찮아요. 근데 결혼은 모르겠어요. 주변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결혼은 하지 말고 연애만 하라는 얘기도 하더군요. 어쨌든 지금은 논문 마무리하고, 병원에 가서 이곳저곳 아픈 곳을 좀 치료해야 해요.”

맞다. 세 가지 일에 ‘아내’ 일을 하나 더하기에는 너무 바쁜 정일미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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