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광장] 왜 클린턴은 패배했나

힐러리 클린턴의 미국 대선 패배는 정치적 이변이었다. 선거일 직전까지 4-5% 가량 도널드 트럼프를 앞섰다. CNN 방송은 투표 직전 클린턴이 당선될 확률이 91%라고 발표했다. 클린턴의 예상치 못한 패배 원인은 무엇일까.

트럼프가 스스로를 워싱턴의 기득권 정치를 변화시킬 후보로 부각시킨 반면 클린턴은 워싱턴 인사이더로 현상 유지의 상징적 인물로 인식됐다. 그는 1992년 남편 빌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 이래 퍼스트 레이디 8년, 상원의원 8년, 국무장관 4년 등 지난 사반세기동안 워싱턴 정계를 주무른 실세였다.

클린턴은 오바마 없는 오바마 노선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취해 ‘오바마 3기’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자신이 왜 대통령이 돼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을 유권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다. 선거 슬로건이 ‘보통의 미국인’, ‘다함께 더 강하게’ 등 여러 번 변경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나친 ‘월가 유착’이 클린턴의 발목을 잡았다. 골드먼삭스로부터 세 번의 특강으로 67만5000달러를 챙긴 것이 특권층의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2001년 백악관을 떠난 이후 15년간 강연료 등으로 2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사실은 그가 서민의 삶에 관심이 없는 방증으로 널리 회자됐다. ‘보통의 미국인’을 강조하는 선거 구호가 유권자에게 공허하게 들릴 수 밖에 없었다.

셋째로 ‘앵그리 화이트’의 위력을 과소평가했다. 세계화, 기술혁신, 산업구조 변화 등으로 근로자들의 삶이 팍팍해졌다. 특히 저학력 백인 근로자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악화됐다. 자신들의 처지가 부모 세대보다 나빠졌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에 따르면 상당수 트럼프 지지자들은 1960년대가 지금보다 살기가 더 좋았다고 응답했다. 트럼프가 던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심플한 메시지가 백인 유권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 온 중부의 ‘쇠락주’ 유권자들이 대거 트럼프 쪽으로 돌아섰다. 중국의 수출 드라이브, 중남미의 불법 이민이 자신들의 일자리와 부를 빼앗아 갔다고 믿게 됐다.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 멕시코 국경 담쌓기, 무슬림 입국 금지, 1100만명에 달하는 불법 이민자 추방 등이 잘 먹혀 들어갔다. 오하이오,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에서 클린턴이 패배한 핵심 원인이다.

트럼프가 저학력 백인 유권자를 핵심 지지 기반으로 삼은 반면 클린턴은 2008ㆍ2012년 선거에서 두 차례 오바마에게 승리를 안겨준 흑인, 히스패닉, 여성, 고학력층, 젊은 층의 지지율을 높이는데 역점을 뒀다. 그러나 이들의 투표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저조했고 오바마에 비해 지지 강도도 떨어졌다. 오바마와 클린턴의 지지율을 비교해보면 여성 55대 54, 흑인 93대 88, 히스패닉 71대 65, 18~29세 60대 54로 주요 유권자층에서 오바마에 미치지 못했다. 두 사람에 대한 지지층의 열정 차이가 천양지차의 선거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마지막으로 ‘부정직하다’, ‘신뢰할 수 없다’ 등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여성 비하 발언, 성추문 스캔들 등으로 도덕성에 커다란 타격을 입은 트럼프와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개인 이메일 사용과 관련해 ‘매우 부주의했다’는 지난 6월 미국연방수사국(FBI) 수사 결과, 선거 직전 터진 ‘이메일 재수사’ 등은 클린턴에 대한 불신감을 극대화 하였다.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클린턴은 두터운 유리천장을 깨고 나라를 이끌 최고 지도자로서 신뢰를 얻는데 실패했다. 공자가 역설한 민신(民信)의 중요성을 거듭 일깨운 미국 대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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