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박정희 신화’의 붕괴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이 얽힌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의 본질 중 하나는 수십년간 이어져온 ‘박정희 신화’의 ‘사후 복수’라는 측면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에 퇴진을 명령하는 민심은 ‘박정희 신화’의 청산에 대한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박정희 신화’와 결별하지 못하고 그것을 줄곧 부여잡아왔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강력한 정서적 토대가 바로 ‘제왕적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었다. 제왕적 리더십이 국가와 기업을 성장시킬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었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 회장들과 독대해 미르ㆍK스포츠 재단의 모금을 독려하고 반대급부로 기업의 지원 정책을 약속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순실씨가 배후에서 재단 모금을 두고 대기업과 총수들의 ‘사면’을 거래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모금을 고리로 쌍방의 이해가 교환됐다면 ‘봉토’를 매개로 한 봉건적 계약관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정경유착’이라는, 꽤 오래 잊혀졌던 단어가 다시 등장한 것도 최근이다.

‘박정희 신화’의 실체는 제왕적 리더십에 의한 국가와 기업의 성장모델이다. 박정희 정부를 거쳐 성장한 대기업의 총수들은 여전히 ‘왕회장’으로 불린다. 여기서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개인이 시스템을 동원하고 지배한다. 개인이 시스템의 작동 원리보다 앞선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의 연루 의혹은 특정 개인이 시스템을 지배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보여준다.

‘제왕적 리더십에 의한 성장모델’은 결과에 의해 모든 과정이 정당화되는 체제다. 개인이 시스템을 지배할 때 나타나는 비리의 구조화, 공적 체제를 이용한 사적 이익의 편취도 결과적으로 얼마나 파이를 키우느냐에 따라 용인된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눈부신’ 업적이 ‘박정희 신화’의 토대가 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의 ‘747공약’ 및 4대강 개발의 실패와, 박근혜 정부에서의 국정농단 사태는 더 이상 제왕적 리더십에 의한 국가ㆍ기업 경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제왕적 리더십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체제의 작동원리를 마련하는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신화는 상징이고, 이야깃거리다. 신화가 현실을 대체할 때 그 사회는 불행해진다. 신화가 현실로 침투하면 개인은 우상화하고 집단은 사교화하며 논리는 ‘도그마’(교리)가 된다.

그런데 ‘박정희 신화’가 붕괴하는 한 편에서 또 다른 신화를 재건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노무현 신화’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서적과 영화 등이 인기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의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것이 또 다른 신화의 재건으로 이어져선 안된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의 갈등은 때로 보수-진보간의 진영논리로 왜곡돼 왔다. 그것이 과거의 지도자에 대한 향수와 신화에 바탕하지 않았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는 신화가 돼서는 안된다. 비판이고 교훈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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