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자괴감이…

“내가 이러려고 개ㆍ돼지로 이 땅에 태어났나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로워…”

청와대를 지척에 두고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백만촛불의 “엄중함”(13일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을 개가 ‘왈왈왈’ 짖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현실에 절망감이 밀려온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보자며 고사리같은 손으로 촛불을 들고, 교복을 입고 거리로 뛰쳐 나왔건만 변한 것은 없다. 유라시아그룹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가능성을 70%(17일 워싱턴포스트)로 높게 보고 있지만, 청와대는 꿈쩍 않는다.

아니 상황은 오히려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절망적이다. 엄중함을 깊이 인식한다던 청와대는 돌연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는 것을”(유영하 변호사) 고려해 달라고 하는가 하면, “지지율 10%를 넘기 전에 어디 가서 대권주자라는 말도 꺼내지 말고 사퇴하라”(15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고 성토한다. “사회혼란을 부추기는 무분별한 의혹제기”(16 일 정 대변인)를 하고 있다며 되려 언론을, 국민들을 물어 뜯으려 한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강희 주필이 “적당히 씹어대다가 싫증이 나면 뱉어 버리겠죠…우린 끝까지 질기게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고 읊조리는 것보다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틀렸다. 개는 왈왈왈 짖기만 하진 않는다. (희망에) 굶주리면 물어 뜯는다. 미친 개는 아무리 두들겨 패도 입에 문 것을 놓치 않는다.

TV쇼 진행자정도 뿐이 안된다고 생각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이변이라고 한다. ‘신사의 나라’ 영국은 EU(유럽연합)와 강제 이혼을 선언했다. “설마 그런 미친 짓을 하겠어”라고 생각했다.

틀렸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8년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이번엔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다. 8년 전 ‘변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이 이번엔 트럼프에게서 ‘변화’를 보려고 한다. 트럼프가 어떤 말을 했건,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이 절망스런 사회에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만을 따졌을 따름이다. 그게 포퓰리즘이어도 상관없다. 변화에 대한 걱정보다 변화에 대한 열망이 컸다.

국민들은 지금 변화를 목놓아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촛불을 들고 ‘대통령 하야’를 외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을 보고 싶어한다. 국민의 엄중한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미국인들이, 영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선택이 무엇인지는 일이 일어난 뒤에야 깨닫는 법이다.

세종대왕은 정치를 일으키는 것을 시인발정(施仁發政)이라고 했다. 백성들에게 어짊과 덕을 잘 베푸는 것으로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 대통령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가 발전하기 위한 전제조건 중 ‘지지의 범위’와 ‘제도화의 수준’(새뮤얼 헌팅턴)이라는 게 있다. 민간 비선실세가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제도화의 수준’으로 보면 그야말로 미개한 수준이다. 정치도 아니다. 5%의 지지율은 ‘지지의 범위’에서 한참 멀어도 너무 멀다. 5% 지지율이 시간이 지나면 50%를 넘길 수 있다고? 버스가 벼랑 끝으로 떨어지고 난 뒤에 지지율이 오르면 뭐하나. 국민들은 오늘도, 내일도 희망의 촛불을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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