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 빅3’ 이재명 성남시장..그는 누구인가

[헤럴드경제=박정규(성남)기자]그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과거였다’. 금수저도 흙수저도 아니다. 아예 수저조차 없는 ‘무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가슴 한켠에 ‘응어리’를 품고 살아왔던 ‘삶의 궤적’은 ‘대권잠룡’이라는 커다란 문에 이제 막 도착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1일 여론조사전문기관 타임리서치 대선선호도 조사에서 문재인 반기문에 이어 3위(14.5%)를 기록하면서 한국정치사에 우뚝 섰다. 여의도 정치에 식상한 국민들이 기성 정치에 반감을 품고 이재명 시장을 지지했다. 그는 간결하고 분명한 메세지를 국민들에게 던진다. 최순실 사태 이전에도 그는 늘 일관된 메세지를 국민들에게 던져 관심을 끌었다. 사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이재명 성남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시장의 메시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늘 정부 방침에 ‘맞짱’을 떴다. 이 시장은 청년배당 무상교복 등 자신이 추진한 3대복지사업을 반대해온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물러서지않았다.

메르스 사태때 그는 ‘첫번째 메르스전사’ 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지난해 6월 메르스 현황이 비공개일때 전국에서 최초로 자신의 SNS를 통해 성남시 메르스 현황을 전격 공개했다. 메르스 현황이 비공개로 진행될대 이 시장의 ‘튀는 행동’은 국민들에게 뜨겁운 지지를 받았다. 이 시장이 메르스 현황을 공개 발표하자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긴급 브리핑을 갖고 메르스 대응 조치와 관련해 “확진환자가 나온 병원명단 등 정보를 국민안전 확보 차원에서 공개한다”고 밝혔다. 메르스 비공개 정부가 이 시장의 선제 발표로 ‘빗장’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에서도 이 시장의 메시지는 일관됐고 분명했다. 다른 대선 후보들이 입장 표명을 유보할 때 이 시장은 누구보다 먼저 대통령 퇴진을 주장했다.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불이 붙자 이 시장이 가장 먼저 거리로 나섰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촛불집회에 참석한 것이다. 대선주자 가운데 유일했다. 다른 잠룡들이 좌고우면할 때 이 시장은 ‘퇴진’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즉각 행동으로 옮겼다. 박 대통령을 향해 “지금 당장 대한민국의 권한을 내려놓고 즉시 집으로 돌아가라”고 외칠 땐 참가자들의 환호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의 연설 동영상은 수많은 계정으로 업로드 됐고 유투브에서만 도합 100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시장은 참가자들과 행진을 함께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곳곳에서 ‘이재명’을 연호하기도 했다.

이 시장은 성남공단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며 ‘주경야독’으로 고입ㆍ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인권변호사를 거쳐 성남시장으로 당선됐다.

그는 1964년 경북 안동의 산골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산꼭대기에서 산전을 일구며 살았다. 화전이 힘들어진 그의 아버지는 일자리를 찾아 성남으로 올라왔다. 아버지는 시장에서 청소를 했고, 어머니는 시장 화장실에서 소변 10원·대변 20원씩 돈 받는 일을 했다. 7남매(5남2녀) 9식구가 반지하 단칸방에서 생활했다. 삶이 너무 힘들어 자살도 두번이나 시도했다. 야구 글러브 공장에 다닐 때 프레스에 왼쪽 팔목 뼈 하나가 잘려나가 장애인이 됐다. 그런데도 공장 선배에게 두들겨맞고, 찬 도시락을 먹으며 공장을 다녔다.

그는 잠을 쫓기 위해 바늘로 찌르고 아카시아 나무에 몸을 비비고, 책상에 압정을 뿌려놓고 공부했다고 한다. 그런 처절한 공부 끝에 그는 1년 만에 중학교 검정고시,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중앙대 법대)에 월급까지 받는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화려한 판검사의 길을 포기하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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