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총수 9명 국정조사 증인 채택…전문가 “1회로 그치고, 망신주기식 조사되지 말아야”

[헤럴드경제=윤재섭ㆍ배두헌 기자] 국회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지난 21일 9명의 대그룹 총수를 다음달 5일부터 시작되는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함에 따라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계속되는 국내외 경기침체로 인해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총수가 청문회장 문턱을 넘나들 경우 경영공백이 생길 수 있는데다 과거처럼 ‘윽박지르기’, ‘망신주기’ 식 조사가 이뤄질 경우 기업의 대내외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기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지도 않은 채 ‘정경유착’이란 꼬리표와 달고, 기업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사태가 빚어질 경우 반 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번 국정조사에선 총수들의 출석을 1회로 최소화해야 하며, 망신주기 식 조사가 아니라 전후 관계에 대한 의혹 해소에 초점을 맞춘 조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다음달 5일 진행되는 1차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한 대기업 총수는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 등 모두 9명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들이 전국에 생방송될 청문회에 무더기로 출석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 1988년 5공 청문회 때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 이준용 대림산업 부회장,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등이 증인으로 채택된 적은 있지만, 일찍이 이처럼 다수의 기업 총수가 한꺼번에 청문회장 증인으로 채택된 사례는 없었다.

재계 총수들은 지난해 7월 이후 청와대 초청을 받고, 박근혜 대통령과 개별면담을 나눴다는 이유로 청문회장을 불려 나오게 됐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아직 입장이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국회의 부름이 있으니 총수께서 청문회장에 출석하실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개별면담 했다는 이유만으로 청문회장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참담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검찰 수사 결과에서 확인된 것처럼 기업도 ‘피해자’라는 입장을 고려했으면 한다”며 “이번 일로 인해 반 기업 정서가 확산되는 사태가 없기를 바란다”고 소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사업구조 재편 및 현장경영 강화를 주문했던 그룹 총수 역시 연말 연초에 해외 사업현장과 투자회사 방문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청문회장 출석 요구로 인해 업무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기업이 본연의 경영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국회가 적극 협조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사안이 심각한 만큼 국정조사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국정조사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작용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된 두 재단에 대한 출연금과 기부는 상시적으로 있는 일로, 최순실이 재단자금을 몰래 빼돌리려 했다는 걸 알 수 없었을 것“이라며 ”기업들을 너무 몰아붙이면 앞으로는 기업들이 공익사업에 돈을 안 내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국회는 국정조사에서 소탐대실하지 말고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부 기업은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기업이 최순실 사기의 피해자로 봐야 한다”며 “국정조사는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아니라 이러한 본질을 정확히 알고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약점이 있는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약점이 없는 기업도 정부 권력이 쥐고 흔들려고 하면 얼마든지 망할 수 있기 때문에 출연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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