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새누리, ‘보수의 욕망’과 ‘보수의 분노’ 사이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혹자는 한국에서 보수란 이념이 아니라 ‘욕망’이라고 했다. 한국에서의 보수주의란 자유경쟁을 근간으로 기성 질서와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념이 아니라 각종 이권과 이해를 고리로 형성된 집단의 속물적인 욕망이라는 뜻일 것이다. 사인(私人)과 정치ㆍ경제ㆍ문화의 권력 엘리트가 결탁해 국가 시스템을 사사로운 이익 편취의 도구로 동원한 ‘최순실 게이트’는 ‘혹자의 비평’이 크게 틀리지 않음을 보여줬다. ‘이념이 아닌 욕망’, 그것이 한국 보수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면임은 분명해 보인다. 

욕망으로서의 보수, 그 일그러진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분노와 환멸이 치솟았다. ‘보수의 심장’으로 꼽히던 대구ㆍ경북의 민심이 완전히 돌아섰다. 여론조사업체인 리얼미터의 주간 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도(긍정평가)는 대구ㆍ경북 지역에서 최근 3주간 연속해서 10%대에 머물렀다. 가장 보수적인 연령층으로 꼽히던 50대에서는 가장 최근의 조사(11월 3주차, 14~18일)에서 14.2%로 역대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60대 이상에선 20.6%로 역대 최저였다.

보수의 분노와 환멸은 정치권에선 새누리당의 분열과 탈당으로 나타났다. 남경필 경기 지사와 김용태 의원이 22일 탈당을 선언했다. 김 의원은 이날 “국민이 헌법을 통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은 최순실과 그 패거리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쓰였다”고 했다. “피땀으로 노력해도 대학 가고 취직하기 어려운 우리 아이들 가슴에 대통령과 최순실 일파는 큰 대못을 박았다”며 “새누리당은 헌법가치와 법치를 수호하기를 포기했다”고도 했다. 전에 없던 격한 어조다. 남 지사는 “헌법의 가치를 파괴하고 실정법을 위반해 가며 사익을 탐하는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최고의 권위를 위임 받을 자격이 없다”며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에서 지워진지 오래고,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국가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당다움을 잃어 버렸다”고도 했다. 


지난 17일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 본회의 자유발언에서 “보수 혁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 의원은 “보수 집권세력은 국가의 공적 시스템을 사설 비선과 사적 이익에 헌납했다, 국가가 사유화되었다”며 “보수가 반드시 지켜야 할 국가 기밀이 청와대에 의해 일개 민간인에게 유출되었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마치 봉건시대 군신관계처럼 변했다”고도 했다. 하 의원은 이러한 행태를 ‘가짜 보수’ ‘봉건 보수’라고 비판했다.

현재 새누리당은 사분오열됐다. ‘친박 핵심’으로 꼽히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에 대한 당 내 비주류의 사퇴 요구가 분열과 분화의 기폭제가 돼 어지럽게 갈라지고 있다. 이 대표를 비롯한 친박 중심 당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하며 ‘비상시국회의’를 결성한 비주류가 있다. 그 반대편에는 정진석 원내대표까지 빠진 가운데 친박계로 이뤄진 최고위원회 중심의 ‘이 대표 체제 엄호세력’이 있다. 최순실ㆍ안종범ㆍ정호성 등의 각종 범죄 혐의에 ‘공모관계’를 적시한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1차 수사결과 발표 이후에는 당이 박 대통령의 결백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이지 않은 세력과 박 대통령의 탈당ㆍ제명ㆍ당윤리위원회 제소를 추진한 이들로 나뉘었다. 대통령 탄핵을 두고서도 찬ㆍ반이 엇갈렸다.

가시화된 새누리당의 분당과 사분오열은, 그동안 공천권이라는 최대의 ‘이권’을 고리로 맺어졌던 주류와 비주류, 친박과 비박이라는 계파간 암묵적인 권력 분배질서와 집단 내 협약관계가, 붕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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