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준의 타임라인] 한국, 국론통합을 이루다

한국의 언론이 요즘처럼 거의 일치된 목소리를 낸 적이 있던 가 싶습니다. 보수적인 ‘조중동(조선·중앙·동아)’과 진보적인 ‘한경(한겨레·경향)’, 그리고 중립적이라는 ‘한서세국(한국·서울·세계·국민)’ 등 전국단위 일간신문의 기사와 사설의 논조는 ‘박근혜 퇴진’ 이라는 명제에서 거의 하나의 결을 이룹니다.

사장의 인사권이나 사업 재승인권을 정권이 쥐고 있는 KBS와 MBC,SBS 등 공중파 방송들 조차 눈치 볼 때가 아니라는 듯 정규뉴스의 아이템 가운데 8할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와 관련된 의혹제기와 비판적 리포트로 채우고 있습니다.

꼭 한달이 됐습니다. 종편채널 JTBC의 ‘뉴스룸’에서 최순실의 노트북을 입수, 비선의 국정농단을 폭로한 것이 지난 10월 24일이었으니까요. 의혹이 아닌 팩트의 힘은 그로부터 우리가 지켜보고 있듯 현 정권의 퇴진을 외치는 민심 대폭발의 상황으로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이념과 성향, 기득권의 유무에 따라 논조를 달리하며 여론형성을 독과점해오던 한국 언론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덕분에 모처럼 국론통합을 이루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는 기실 ‘진지한 농담’입니다.

한국 언론이 이토록 한목소리를 내며 모처럼 ‘동지적 관계’를 이루게 된 계기는 양파 벗겨지듯 까져나오는 최고권력의 비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도한다고 믿었던 여론과 그것의 총합인 민심의 힘에 압도 당한 측면이 더 큽니다. 세월호 참사 보도 과정에서 ‘기레기(기자 쓰레기)’라며 최악의 손가락질을 받았던 트라우마가 이번 게이트와 관련된 각종 에피소드를 취재하며 경쟁적인 ‘단독보도’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 또한 그럴 듯합니다.

평소 드라마나 예능에 빠져 있던 젊은 직장인들이 부쩍 뉴스에 집중한다는 조사도 나옵니다. 그건 언론사들의 특종경쟁에 이끌려서라기 보다 대통령이 중심이 된 작금의 스캔들이 그 어떤 막장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제는 SBS ’8시뉴스’에서 그동안 권력의 ‘경호대’로 비판받아온 검찰 조차 “대통령의 녹취파일을 10초만 공개해도 촛불이 횃불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고 전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위법혐의가 99%라고 최순실 등을 수사한 공소장을 발표하자 이를 ‘사상누각(모래 위의 성)’이니 ‘소설’이니 하며 무시하려는 청와대를 향해 “더 이상 예우는 없다”라며 공격신호를 날린 셈이지요.

그동안 한국 사회의 선진화에 가장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돼온 검찰과 정치(국회), 그리고 언론이 국민의 힘을 믿고 똘똘 뭉쳐 있는 지금, ‘위기는 기회’라는 상투어가 참으로 진리임을 거듭 깨닫게 됩니다.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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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덕준/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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