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용의 머니스토리] 동탁과 박근혜…난세의 시작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3세기 중국의 공적(公敵)은 동탁(童濯)이었다. 황제는 이미 십상시와 외척들의 횡포 속에 실권을 잃은 지 오래였다. 동탁은 소제(少帝)를 폐하고 헌제(獻帝) 꼭두각시로 옹립해 온갖 폭정을 일삼았다. 지방 제후들이 들고 일어났다.

원소(袁紹)가 이끄는 반동탁연합군은 양에서나 질에서 모두 압도적이었다. 파죽지세로 수도 낙양(洛陽)을 함락했다. 동탁은 황제를 볼보로 장안(長安)에서 농성한다. 승전을 눈앞에 둔 순간, 갑자기 연합군이 무너진다. 소설 삼국지의 ‘전국옥새(傳國玉璽)’를 둘러싼 제후간 다툼은 정사가 아니다. 정권획득을 눈 앞에 두고 서로 대권을 잡으려다 분열됐음을 극화한 의도가 짐작이 간다. 결국 동탁은 양아들 여포(呂布)의 손에 죽고, 정권은 동탁의 부하였던 이각・곽사ㆍ장제・번조 등 ‘4잔당’의 손아귀에 다시 떨어졌다.


원소는 명문가 출신에다 영지도 가장 넓어 세력이 강했다. 하지만 자만과 탐욕, 우유부단함으로 얕보던 조조(曹操)에 멸망당한다. 유비(劉備)는 황실의 후예임을 내세워 기득권층의 지지를 꽤 얻는다. 하지만 이미 ‘한(漢)’은 ‘황건적의 난’으로 궤멸된 시스템이었다. 손권은 강력한 지역기반으로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지만 중앙을 아우를 힘도 명분도 적었다. 삼국을 통일한 것은 조조의 위(魏)나라 시스템이다.

조조는 반동탁 연합군 가운데 낙양에서 가장 가까운 지방 출신이다. 세력은 약했지만 중앙 정계 사정, 즉 민심에 밝았다. 욕심이 크되 숨기지 않았고 언행도 과감했다. 두뇌회전이 빠르고 순발력이 뛰어났다. 사람 사귀기를 좋아해 가장 많은 인재풀(pool)을 보유하게 된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 ‘박근혜’는 사실상 공적이다. 취임 이후 끊임없이 ‘십상시(十常侍) 논란’에 휩싸이더니 결국 ‘최순실’에 무너졌다. ‘박정희의 딸’, ‘비운의 공주’, 그리고 ‘선거의 여왕’으로 세워진 철옹성을 무너뜨린 것은 내부 부패였다.

광화문 광장 촛불은 당장이라도 청와대를 뒤덮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대통령은 2선 후퇴도, 하야를 하지 않은 채 ‘헌법농성’ 중이다. 총리와 특검이라는 칼까지 쥔 야권의 움직임이 더디다. 총리 후보는 오리무중이고, 특검 후보도 설왕설래 수준이다. 이대로면 탄핵이 되도 다시 ‘박근혜의 국무위원’들이 국정을 이끌게 된다. 어느새 여권 내 비박계도 품속의 비수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친박들은 녹슨 창까지 다시 꺼내 최후의 항전을 할 태세다.

현 정국에서 누가, 어떤 세력이 3세기 중국의 실력자들과 닮았는 지 굳이 밝힐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지금 가장 세력이 크다고, 캐스팅보트 가졌다고, 부동층으로 잠수한 기득권에 호소할 수 있다고 집권을 장담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이번 최순실 사태의 본질은 대통령 측근의 국정농단이 아니다. 우리 시스템이 권력자와 그 측근에 이렇게 쉽게 놀아날 정도로 취약하다는 게 본질이다. 시발점이 된 정운호 사건 이후를 짚어보자. 변호사, 판사, 검사, 대기업총수(일가), 교육자, 군인, 관료, 의사, 심지어 언론까지 등장하지 않는 기득권층이 없다. 촛불 민심은 대한민국 시스템의 전체적인 대개조를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혁명, 대한민국의 난세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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