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거세진 촛불, 5차례 정치를 바꿨다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 5차례에 걸쳐 촛불은 점차 거세졌고, 그때마다 촛불은 정치를 이끌었다. 촛불집회에 맞춰 정치권은 대응했고, 진상규명 요구부터 탄핵 정국까지 5차례 촛불집회는 정국의 주요 변곡점이 됐다.

5차 촛불집회(26일)는 정치권 최대 분수령이다. 특검도 국정조사도 탄핵 절차도 모두 5차 촛불집회 이후로 맞춰졌다. 이번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야권은 탄핵 절차에 본격 돌입하고, 여권은 추가 탈당 및 분당 여부가 가시화될 전망이다. 여야 모두 최대 규모인 5차 촛불집회를 동력으로 삼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5차 촛불집회가 중요한 기점이다. 박 대통령은 오는 29일 검찰 대면수사 요청을 받은 상태다. 김현웅 법무부장관ㆍ최재경 민정수석 사표 수리 여부도 결정해야 한다. 여야나 청와대 모두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기회 또는, 위기다. 


촛불집회는 지난 10월 29일 5만명(이하 주최 측 추산)으로 시작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 카드를 꺼냈으나 곧 연설문 유출 의혹이 터지면서 대국민사과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촛불집회나 정치권 모두 진상규명이 핵심 의제였다.

11월 5일 2차 촛불집회는 20만명이 참여, 일주일 사이 세가 급격히 늘었다. 박 대통령의 개각 강행이 불에 기름을 부었다. 1차 촛불집회 이후에도 박 대통령이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 등 개각을 강행하자 거센 반발이 일었고, 이어 2차 대국민사과에 나섰지만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최저치인 5%로 급락했다.

일주일 사이 촛불집회는 수로만 급증한 게 아니라 ‘하야ㆍ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로도 변모했다. 야권은 여전히 촛불민심과는 거리를 뒀다. 더불어민주당은 조건부 퇴진론을, 국민의당은 대통령 탈당 및 거국중립내각 구성 등을 앞세웠다. 여권은 분열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비박계는 당 지도부 사퇴를 요구했고 친박계 지도부는 이에 침묵하며 대신 야권을 향해 “국정정상화를 위해 영수회담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야권이 촛불집회에 참여한 건 100만명이 운집한 3차 촛불집회부터다. 3차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야권은 강경 기조로 전환했다. 100만 촛불집회가 야권을 향해서도 경고를 보낸 탓이다. 촛불집회에선 정부ㆍ여당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함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야권을 향해서도 적지 않은 불만이 터졌다. 민주당은 3차 촛불집회 이후 공식적으로 대통령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여권도 민감했다. 비박계 내에선 탈당ㆍ분당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고, 친박계 지도부는 야권에는 중립내각 구성을 요구하는 한편, 비박계의 사퇴 압박에도 강하게 맞대응했다.

이후 4차ㆍ5차 촛불집회를 거치며 야권은 일제히 당론으로 탄핵을 채택했다. 새누리당 역시 김무성 전 대표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비박계를 중심으로 탄핵 절차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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