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보행실태①] 보행권 vs 생존권…횡단보도 긋는데 10년째 ‘찬반 팽팽’

-서울시ㆍ지하상가 상인, 도심 3곳 횡단보도 설치 두고 ‘갈등’
-보행자 불편에 무단횡단 빈발…서울시 “안전ㆍ편의 위해 필요”
-지하상가 상인단체 “횡단보도는 사형선고…손님 끊긴다” 반발

[헤럴드경제=강문규ㆍ이원율 기자] 서울 도심, 횡단보도 하나 긋는데 벌써 10년을 허송세월하고 있다. 시민들은 ‘보행권’을 내세워 횡단보도 설치를 주장하고 지하상가 상인들은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맞서고 있다.

상인들과 보행자들로 붐비는 서울 중구 청계6가 사거리. 평화시장~신평화패션타운 사이 8차선 도로를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가 없다보니 목숨을 건 무단횡단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최근 이 일대를 둘러보니 흥인지문 교차로 쪽으로 5분은 넘게 걸어가야 횡단보도를 찾을 수 있었다. 찾다못해 잰걸음으로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시민들은 얼핏 봐도 아슬아슬했다. 손수레를 끌고 가던 상인 임모(51) 씨는 “바빠 죽겠는데 멀리 있는 횡단보도로 돌아갈 갈 시간이 어디 있느냐”며 “지하상가로 가면 짐을 옮길 수 없고 다리도 아프니 그냥 위험 감수하고 무단횡단으로 가는 것”이라고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서울시는 이 같은 상황이 빈발하는 청계6가 사거리 등 보행이 불편한 도심지에 횡단보도를 놓으려는 사업을 10년째 검토만하고 있다. 인근 지하상가 상인들이 ‘생존권’을 들고 거세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횡단보도 설치 사업으로 지하상가 상인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구역은 청계6가 사거리, 회현 사거리, 강남역 사거리 등 모두 3곳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 지역들에 무단횡단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지하상가 상인들이 매출 문제로 공사를 거부해 추진이 어렵다”며 “에스컬레이터 등 보행자를 이끌 수 있는 시설 설치 등 설득에 나서고 있지만 무조건 반대만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인과 보행자들이 평화시장~신평화패션타운 사이 8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고 있다.
평화시장~신평화패션타운 사이에는 청계6가 지하쇼핑센터가 횡단보도 대신 건널목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청계6가 지하쇼핑센터 모습.

횡단보도를 설치해달라는 민원이 쇄도해도 아직 손도 대지 못하는 건 관할 구청도 마찬가지였다. 중구의 한 관계자는 “주민들이 횡단보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민원이 잦은 만큼 우리도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이다”며 “다만 지하상가 상인들 반발이 심할뿐더러 최종결정은 서울시가 내려야 하기에 구청이 할 수 있는 일이 크게 없다”고 밝혔다.

일대 지하상가 상인들은 ‘매출 타격’을 이유로 횡단보도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 횡단보도가 생기면 지하상가를 찾는 보행자 수가 크게 줄고, 운영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주장했다. 실제 상인들은 200여개 상가가 입주한 ‘회현 지하쇼핑센터’도 상가 위에 횡단보도가 설치된 후 10년간 매출이 절반 넘게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청계6가 지하쇼핑센터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 A 씨는 “가만히 있어도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건 우리에게는 사형선고”라며 “살기 위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막아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지하도상가상인연합회 관계자는 “에스컬레이터를 놓아도 횡단보도가 있으면 누가 지하상가로 가겠느냐”며 “한 지하상가에 거의 200개씩 점포가 있는데 횡단보도가 들어설 때마다 1000명 사람이 굶어죽는다”고 말했다. 이어 “보행자와 지하상가 상인이 상생할 수 있는 새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반발했다.

되풀이되는 갈등에 전문가들은 ‘제 3자’를 끌어들인 갈등 조정을 제안했다. 김명환 한국갈등해결센터 전문위원은 “양자간 성급히 결론만 내려 할수록 갈등은 더욱 깊어지기만 할 것”이라며 “서로 한발짝 물러난 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했다. 또 “보행권과 생존권은 모두 중요한 가치인 만큼 어느 한 곳의 희생을 강요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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