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입맛따라 ‘때론 국정, 때론 검·인정’

유신때 국정교과서 첫 등장
DJ때 혼용거쳐 MB때 완전검정

정부 수립 이후 60여 년간 중ㆍ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발행 방식은 국정과 검ㆍ인정 제도를 오갔다. 한국근현대사 해석을 둘러싼 보수와진보 진영 간 이념 논쟁 때문이었다. 특히 수립 시 정당성이 취약한 정권이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정 교과서를 악용했다는 지적이다.

한국전쟁 이후 검정으로 출발한 역사 교과서가 국정으로 바뀐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위해 10월 유신을 단행하면서 부터다. 그러다 김대중 정부 들어 역사 교과서는 검정제로 전환되기 시작했고, 2011년 이명박 정부에 완전 검정제가 정착됐다. 그러다 “혼이 비정상”이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긴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재추진, 역사 교과서가 다시 이념 논쟁의 한복판에 놓이게 됐다.

1954년 1차 교육과정 공포 이후 줄곧 검ㆍ인정이었던 역사 교과서의 발행 체제는 1973∼1974년 3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국정으로 발행 체제가 바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을 어기면서까지 1972년 유신 체제를 선포한 뒤 제정된 3차 교육과정에 따라 1974년 중ㆍ고교 정책 교과(사회ㆍ국사ㆍ도덕)는 국정으로 바뀌었다.

이후 4차(1981년)ㆍ5차(1987년)ㆍ6차(1992년) 교육과정에서도 국사 교과서는 국정 교과서 하나만 편찬됐다. 교과서 개발, 집필, 편집 등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총괄했다. 당시 국정 역사 교과서들은 유신, 12ㆍ12 쿠데타 등 헌정을 유린한 사건들을 미화했고, 이는 현재까지도 국정화 반대의 주요 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다 2003년부터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에 또 다시 변화가 생겼다. 국정 국사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시각을 주입한다는 비판에 따라 김대중 정부는 2002년 국사 교과서의 검ㆍ인정제 도입을 결정한다. 김대중 정부는 중학교와 고교 1학년 국사 교과서는 국정으로, 고교 2ㆍ3학년 한국근현대사는 검정으로 발행하도록 했다. 이때 근현대사 교과서는 6종이 사용됐다.

이후 국사와 한국근현대사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10년 ‘한국사’로 통합되면서 지금의 완전 검정 체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기존 검정 교과서들이 대한민국 건국과 이후 발전 과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등 ‘좌편향’됐다고 박근혜 정부는 평가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분단 책임이 남한에만 있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고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도발의 행위 주체가 명시돼 있지 않다”며 검정 교과서들에 수정명령을 내렸다.

신동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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