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 통치에 불복하되 평화롭게…시민 불복종의 기원

역사적 진보는 당대 위법서 시작

킹목사·간디, 비폭력불복종 위력

“세상에는 좋은 법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법도 있기 마련이며, 나쁜 법에 저항하고 불복종 하는 것은 자유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전통을 지키는 일이다.”

미국의 헌법학자인 알렉산더 빅켈은 법을 어기는 방식으로 불의에 저항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의 정당성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했다. 법은 그 자체로 정당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동의와 신뢰에서 그 정당성을 획득한다는 의미다. 세계 근현대사에서 인간의 자유를 크게 신장시킨 역사의 진보는 당시로 보면 법을 어긴 행위였다. 그러나 역사는 법 이전에 인간의 권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의미있는 승리를 획득한 시민 불복종 운동은 흑인 민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1955년 12월1일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는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 여성이 버스 내 백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자 미틴 루터 킹 목사 등 흑인들은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은 구역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다 경찰에 연행됐지만 1년 간의 투쟁 끝에 결국 흑인 분리법안은 위헌 판결을 받았다.

이보다 앞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1930년 대공황으로 영국이 식민지 인도에서 소금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는 ‘소금법’을 시행하자 직접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 서부 해안에 위치한 어촌 단디로 하루 60㎞씩 걷는 ‘소금 행진’을 진행했다. 처음 78명으로 시작된 행렬은 수천명으로 불어났고 간디는 영국 경찰의 폭력과 저지에도 단디의 바닷가에 도착해 갯벌에서 한줌의 소금을 건져냈다.

이들의 시민불복종 운동은 19세기 중반 철학자 소로의 영향을 받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미국의 흑인 노예제에 반대하며 인두세를 내지 않았고 그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그는 “사람 하나라도 부당하게 잡아 가두는 정부 밑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어야 할 곳은 감옥”이라며 악법에 순응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시민 불복종 운동의 수단으로서 폭력을 사용할 것인지는 오래된 논쟁이다.

최근 주말마다 열리는 대규모 촛불집회에서도 ‘비폭력’을 외치는 시민과 ‘불복종’을 외치는 시민들 간의 갈등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불복종’을 외치는 시민들은 “4ㆍ19 혁명이나 5ㆍ18 항쟁도 폭력이 동원됐지만 결국 독재 정권을 이겨낸 사건이었다”며 정부와 경찰이 씌운 ‘불복종’과 ‘비폭력’의 굴레를 벗어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킹 목사나 간디가 보여준 역사적 사례는 반드시 ‘불복종’이 ‘폭력’과 결부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시민 불복종의 과정에서 부당한 국가의 폭력에 ‘비폭력’으로 맞설 때 그 희생이 기득권 측의 양심을 깨우고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을 역사는 보여준다.

킹 목사는 1965년 흑인 투표권리법안 통과를 주장한 셀마 행진에서 경찰의 폭력 진압과 연행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걷기만 했을 뿐이다. 실제 흑인의 권리 향상이 이뤄진 과정을 보면 비폭력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킹 목사의 셀마 대행진은 백인 성직자들의 양심을 깨웠고 백인들이 행진에 대거 참여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결국 길을 내줘야했고 린든 존슨 대통령은 차일피일 미루던 흑인 투표권리 법안을 의회에 상정할 수 밖에 없었다.

원호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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