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역사교과서 ‘박근혜 효도 교과서’ 비판 비등

[헤럴드경제]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한 이후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에서 비판여론이 들끓고 있다.

우선 국정 역사교과서가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한 것과 관련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거슬렀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박정희 정부의 경제성장과 새마을운동 등 공적에 대한 서술은 늘리면서 인권탄압 등 어두운 부분을 축소한 것과 관련해 ‘박근혜 효도 교과서‘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집필진 구성 과정의 불투명성과 집필진의 우편향 논란, 근현대사 부분의 역사학자 배제 등 지적도 뒤따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명’이라고까지 강조하며 야심차게 밀어부쳤지만 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벼랑 끝까지 몰리면서 국정 역사교과서 역시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회 교육문화체육위원장인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은 29일 국회의원ㆍ비상대책위원 연석회의에서 “이번 역사교과서 내용을 보면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면철회를 해야 할 만큼 전반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며 “박 대통령의, 박 대통령에 의한, 박 대통령을 위한 ‘박근혜 교과서’”라고 꼬집었다.

실제 국정 한국사 교과서 현장검토본의 박정희 정부 경제발전 관련 내용은 4~5쪽 분량으로, 기존 검정교과서들의 3~4쪽 분량보다 늘었다.

이는 교과서 전체분량이 기존 검정교과서에 비해 20% 가량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폭 확대된 셈이라 할 수 있다.

현장검토본은 새마을운동을 비롯해 경부고속도로 건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등 박정희 정부의 ‘빛’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술했다. 반면 동백림사건을 ‘계속되는 안보 위기’라는 소제목에서 북한의 교포와 유학생 포섭 기도라고 소개할 뿐 수사ㆍ정보기관의 고문 등 심각한 인권탄압이 자행됐다는 내용은 생략되는 등 박정희 정부의 ‘그림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기술했다.

또 5ㆍ16을 ‘군사정변’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정변을 일으킨 당시를 대표하는 박정희 소장과 차지철 등 군인들의 사진을 누락시켰다. 대신 박정희 대통령이 1976년 포항제철 제2고로에 불을 붙이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철강 산업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포항제철은 세계적인 철강 회사로 성장했다’는 설명을 달았다.

중도성향 교사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은 “박정희 정부의 관련 서술을 과다하게 편성하고 실정의 불가피성을 변호하는 등 균형 잃은 역사 서술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사편찬위는 “기존 교과서와 비교해 정치 상황에 대한 서술은 비슷하고 경제발전 과정 서술은 다소 늘어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또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미화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유신체제를 독재체제로 명시하고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과 당시 진행된 반유신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사진 및 사료와 함께 풍부하게 제시했다”고 반박했다.

국편은 “다만 당시의 국제 정세와 안보위기 상황을 함께 서술한 것은 학습자가 독재 체제 성립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면서 “기존 교과서에도 유신 성립 이전 국제정세 변화와 안보 위기 관련 내용을 배치하고 있으며 향토 예비군 창설 사실도 기술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새마을운동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21세기형 신(新)농촌개발 패러다임’으로 적극 홍보해왔는데 이번 현장검토본에서도 서술 분량이 확대돼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고교 국정 한국사교과서에서는 새마을운동에 대해 “정부의 독려로 시작됐지만, 농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농촌의 자립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근면ㆍ자조ㆍ협동정신을 강조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돼 도로ㆍ하천 정비, 주택 개량 등 농촌환경을 개선하는 성과를 거뒀다. 2013년 유네스코는 새마을운동 관련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등 긍정적인 평가 중심으로 서술했다. 반면 비판적인 내용은 “유신체제 유지에 이용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는 한줄뿐이었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는 “기존 검정교과서들의 새마을운동 묘사는 설명과 함께 문제점도 언급하고 분량으로만 봐도 중립적이었다”며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이것 하나만 봐도 박근혜 대통령의 ‘효도 교과서’라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국편은 이에 대해 “새마을운동 관련 서술 분량이나 내용은 기존 검정 교과서와 비교해 큰 변화가 없어 확대ㆍ과장 서술이라 볼 수 없다”며 “새마을운동이 유신체제 유지에 이용됐다는 문제점을 함께 기술했다”고 주장했다.

집필진을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2011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표방하며 출범한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출신들이 집필진에 다수 포진돼 있다는 것이다.

이번 국정교과서 집필진 가운데는 이주영, 이민원, 김권정, 나종남, 김명섭 교수 등이 한국현대사학회 출신이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을 통해 “발표되지 않은 심의위원에는 (현대사학회 인사들이) 더 많이 들어가 있을 것”이라며 “국정교과서는 한국현대사학회 교과서로 이미 교육부가 그렇게 밀어줬지만 0.1% 채택에 그친 교학사 교과서의 후신”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중도ㆍ진보성향 학자들은 물론 보수성향의 학자들도 대거 집필참여를 거부하면서 결과적으로 원로학자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집필진 명단에는 정년퇴직한 ‘명예교수’가 상당수 자리하고 있다. 집필에 원로들이 많이 참여하면 소장학자들과의 활발한 토론이 어려워져 원로들의 입김에 휘둘리기 쉽다는 평가다.

특히 논쟁거리가 많은 근ㆍ현대사 부분에서는 더욱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역사학자 출신인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로학자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1980∼90년대의 역사적 성과를 반영하지 못했다”며 “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제목에 못 달고 동학혁명을 운동으로 폄훼하는가. 역사의 기본도 모르는 초보자 엉터리 역사학자에 의해 쓰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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