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신성한 의무’… 오바마의 마지막 국군병원 방문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손에 살균제를 바르며 한 병실 문 앞에 섰다. 그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드렸다. 아무 응답이 없었다. 오바마는 재차 두드렸지만 역시 대답이 없었다. 그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환자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제레미 씨, 어떻게 지냈어요?”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하다 탈레반의 공격을 받아 하반신이 마비된 제레미 헤인스 소령은 2년 전 오바마 대통령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당시 매릴랜드 주(州) 월터리드 육군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는 것이다. 다시는 걷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절망에 빠져 있었던 그는 오바마의 방문에 삶의 희망을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6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월터리드 육군의료센터의 한 상이군인 병실을 방문하고 있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대통령이 수호해야 할 지상의 의무로 꼽힌다. 그러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국민이 희생당하게 됐을 경우 최선의 예우를 다해야 한다는 것 또한 그 의무의 범주에 포함된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국군병원을 찾아 상이군인들을 만나는 것이 오바마 대통령의 ‘신성한 의무’라며 그와 관련한 일화들을 보도했다.

오바마가 월터리드를 방문한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비록 언론에 떠들썩하게 알리지는 않았지만 그는 수시로 군병원을 방문해 상이용사들을 위로했다. 얼굴만 잠깐 비추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한 번 가면 3~4시간씩 시간을 보냈다. 그는 지난 28일에도 의전을 최소화한 채 조용히 월터리드를 찾았다. 그의 임기 중 23번째이며,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방문이다. NYT는 오바마가 평소처럼 만나야할 환자 리스트를 받아들고 병실과 물리치료실 등 군인병동 곳곳을 돌아다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오바마와 병원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아프간 참전 용사 티모시 페인은 당시의 일을 이렇게 기억했다. “오바마가 들어와서 ‘팀(티모시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 당신의 희생에 감사하오. 국가는 당신에게 빚을 졌소’라고 하더니 내 손에 대통령 기념주화를 쥐어주었다. 오바마가 ‘무슨 일이 있었죠?’라고 묻자 나는 ‘음… 난 폭발 당해버렸어요’라고 했고, 우리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섣부른 위로 대신에 희생자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다가간다는 것이다.

지난 6월에 방문했을 때는 한 상이군인으로부터 팔굽혀펴기 도전을 받기도 했다. 오바마는 즉석 제안에도 거리낌없이 양복 웃도리를 벗어던졌고 20여회 팔굽혀펴기를 했다. 당시 오바마에게 대결을 제안했던 존 테리는 “내가 얼마나 감동받았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죽을 때까지 그 날을 기억할 것이다”라고 했다.

오바마는 희생자 가족들을 일일이 포옹하거나 셀카를 찍는 등의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물론 전장에서 끔찍한 부상을 당한 이들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바마 정부에서 고문을 지낸 데이비드 액슬로드는 오바마가 종종 월터리드에서 백악관으로 돌아와 침울한 기색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한 번은 오바마가, 결혼한 지 얼마 안돼 남편이 부상당해 돌아온 부부를 만나고서는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낙관적으로 격려를 해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이제 막 출발을 하는 아이들이다. 이 일이 그들의 남은 인생에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일각에선 잦은 월터리드 방문이 오바마에게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부상군인을 보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힘들어서 사임하게 됐다고 밝혔을 정도로 그 트라우마는 상당하다. 실제 오바마는 2011년 켄터키주 포트 캠벨 기지에서 “내가 월터리드를 방문할 때마다 전쟁의 대가를 떠올린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오바마가 재임 기간 중동 분쟁에 적극적으로 군대를 보내지 않은 이유가 그러한 트라우마 때문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고문을 지낸 엘리엇 코헨은 “대통령은 국민을 험지로 보내고도 밤에 쿨쿨 잘 수 있는 심리적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앞으로 당선될 대통령들은 월터리드 방문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월터리드 방문이 전쟁의 위험을 부각시켰지만, 필요시 전장에 군대를 보내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NYT는 대통령의 방문은 군인들의 희생에 품격을 심어주고, 그들의 희생이 모종의 원대한 계획의 일부분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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