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영화에 찍힌 방점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 기자]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역사적으로도 전쟁이나 전염병이 일어나면 공통점들이 발견된다. 임진왜란을 예로 들면, 왕을 비롯한 집권층은 도망을 가버리고, 신하와 백성들만 전장에 남는다.

백성들은 몇가지 부류로 나눠진다. “왕도 도망가는데 내가 나라를 왜 지키냐”라고 말하는 병역 기피형도 있고, 노비중에는 조선에서 노비로 사는니 왜구가 된 경우도 있었다. 결국 힘 없고 ‘빽’ 없는 수많은 백성만이 전쟁의 참혹상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순신 같은 위대한 군인이 정말 가끔 있지만, 전쟁 수행에는 백성 스스로가 일어나 조직한 자위군인 의병(義兵)의 역할이 매우 컸다.

최근 영화계에 잇따라 등장하는 재난영화들의 재난 해결방식들은 우리 역사적 전통에 닿아있다. ‘부산행’과 ’터널’에 이어 12월 7일 개봉하는 원전 재난 블록버스터 ‘판도라’ 등 재난영화들이 잘 먹히는 것도 역사적 리얼리티를 통한 국민정서와 공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같은 대형재난 외에도 지진도 국가적 위험 요소로 부각되고 있어서인지 재난영화는 우리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잘 와닿는다.

재난영화는 대체적으로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우선 ‘재해와 재난이 우리 주위에 언제건 닥쳐올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리고 ‘재난을 당해도 구출해줄 공적 기구는 없다’고 말하면서 ‘그러니 각자도생(各自圖生)하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제각기 살 길을 도모하는 것 외의 방법은 없다. ‘판도라’에서는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는데도 정부관료는 대응 매뉴얼이 없다고 실토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누가 해결할 것인가? 결국 개인적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의병정신에 기댈 수밖에 없는가? 임진왜란때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운동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다시 살아났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군, 광복군으로 연결된 의병정신은 지금의 재난영화에서 부활했다. 국가적 재앙에서 조직화되지 못한 ‘의병’만으로 숭고와 희망을 찾는다면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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