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총수 국조 청문회 D-5…전문가 제언] 평화의 댐·IMF 환란·조폐공사 파업 등…용두사미로 끝난 역대 국정조사 청문회

민간인 국정농단 국조 역대 24번째

‘최순실 사태’ 파장으로 국회가 국정조사에 돌입했다. 재계 인사들도 줄줄이 국정조사 청문회장에 불려나간다. 그러나 역대 국정조사 결과에 대한 평가엔 항상 ‘용두사미’, ‘유야무야’ 등의 수식어들이 따라붙는다. 국정조사가 훑고 간 자리엔 ‘무용론’만 남았다는 평가도 있다.

국정조사가 비판받는 이유는 다양하다. 증인 채택 문제와 자료 제출 요구, 이를 거부하는 증인들 사이의 힘겨루기, 증인들의 무성의한 답변과 국회의원들의 자질 부족 문제도 국정조사 무용론이 제기되는 원인이다. 여기에 여야의 정파적 입지에 따른 정치적 고려까지 가미되면 창대한 시작에 비해 끝은 항상 미미하기 마련이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등록된 국정조사 기록을 기준으로 하면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국정조사’는 역대 24번째 국정조사다. 제헌헌법에 명시됐던 국정조사는 유신헌법(1972년 10월)으로 일시 중단됐다가 1987년 헌법(61조)에 명시되면서 다시 생명을 찾게 됐다.

안타까운 점은 국정조사 횟수가 누적될수록 ‘무용론’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조사 결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은 그 단면이다. 실제로 지난 13대 국회에서는 4건의 국정조사 가운데 3건에 대한 결과보고서가 채택됐다. 그러나 19대 국회에서는 3건의 국정조사가 실시됐지만 단 한건도 결과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다.

첫 국정조사였던 1993년 평화의 댐·율곡 비리 국정조사는 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 일부 의원들이 당론 불확정을 이유로 구체안을 준비하지 않거나, 지각출석을 하는 등 의도적인 시간 지연으로 유야무야 됐다. 평화의 댐 국정조사가 곧바로 전직 대통령인 전두환씨를 겨냥하게 되면서, 민자당 의원들이 ‘육탄 방어’ 공세를 펴기도 했다.

상무대 정치자금 의혹 조사도 당시 온 나라를 뒤흔든 거대 사건이었다. 건설사 회장이 회사돈을 빼돌린 자금의 용처를 밝히는 것이 국정조사의 핵심이었는데, 수세인 민자당 측은 정치자금으로 사용된 부분만을, 야당인 민주당 측은 모든 자금에 대해 조사를 하자며 맞섰고 결국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마무리 됐다. 15대 국회에선 총선 공정성시비 국정조사특별위원회와 한보사건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국정조사를 진행했다.

‘단군이래 최대 경제위기’라 불렸던 IMF 환란에 대한 국정조사는 김영삼 전 대통령 등 5명의 참고인이 불출석 이유로 고발되는 곡절을 겪었다. 모두 기소유예와 기소중지, 무혐의 처분 받았다. 당시나 지금이나 국정조사의 최대 쟁점은 증인 채택 여부란 점에서 같다.

조폐공사 파업 유도 국정조사도 세간을 뒤흔들었던 사안이다. 진형규 전 대검찰청 공안부장이 “조폐공사 파업은 공기업 구조조정의 전범으로 삼기 위해 검찰이 파업을 유도했다”는 내부고발 때문에 불거진 사안이다. 지난 1999년 7월 국정조사 특위가 구성돼 8~9월 21일간 국정조사가 진행됐다. 그러나 여야 결과보고서 채택은 여야간 이견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전 검찰총장의 부인 등 5명이 위증혐의로 고발돼 전원이 기소됐고, 이 가운데 3명이 징역1년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홍석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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