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지변 보다 정치지변’, 라이프스타일 윤기를 잃다

[헤럴드경제=함영훈기자] “주말엔 촛불 아니면 ‘방콕’, 주중엔 업무…그 밖엔 그 아무 것도, 격하게 하고 싶지 않다.”

논픽션이 픽션을 압도할 때, 예상치 못한 이상 징후가 항상성을 혼란시키고 비상식이 상식을 포위할 때, 국민의 심리는 적잖은 혼란과 변화를 겪는다. 라이프스타일을 윤기 나게 해주는 여러 기재(器才:기량,재능,재료)는 사치가 된다.

천재지변을 능가하는 ‘정치지변’이 벌어지면서 주말 국민의 일상은 대체로 거리에 뛰쳐나가거나, ‘방’에 ‘콕’ 박히는 두 부류로 갈려버렸다. 다채로움의 스펙트럼이 사라지고 ‘2위치 스위치’ 같은 단조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공연, 여행, 극장, 유통가는 침체의 늪 속에서, 아프지만 숨 죽인 채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123RF]

보통 연말 공연가는 대작들이 넘쳐난다. 송년과 성탄, 나눔과 어울림의 성수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예술을 향유할 만한 감성이 돋지 않는다.

“이 시국에 극장은 무슨…”이라는 냉소가 퍼지면서 무대에 마음을 떠맡기는 관객은 반토막 미만으로 줄었다.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관객은 최근 네 번의 주말만 따지면 작년 같은 시점에 비해 20% 이상 감소했다고 한다.

출판가는 박근혜-최순실-최태민-유신정권 관련 서적과 정치 전망서, 청와대 관련 서적 만이 나홀로 호황을 누린다. 인문 교양서는 “지금 그게 통하는 시대냐?”라는 냉소 속에 침체에 빠졌다. 신간 출시량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0% 안팎 줄었다.

‘웰빙’시대 대표주자인 해외 여행과 국내 여행은 최근 3년 간 해질 줄 몰랐다. 메르스 사태에도 외국인들의 한국 방문 만 줄었지, 한국인의 국내 해외 여행은 늘었다. 하지만 국정농단의 정치지변 이후 ‘여행보다는 정치이슈 집중’ 또는 ‘여행 의욕 감퇴’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투어의 2015년 11월의 전년 동기대비 해외여행객 증가율은 26.4%였다. 이는 한국관광공사의 공식 집계와 거의 비슷이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에도 이 회사 11월 해외송객 증가율은 15.9%였다. 그러나 올 11월 해외여행 증가율은 12.7%에 그쳤다. 최근 3년래 최저치이다.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와 컨슈머인사이트는 매달 성인남녀 1200~1500명씩에게 여행 의향을 조사하는데, “여행하는데 돈을 작년보다 더 썼다”는 응답이 10월엔 41%였지만, 11월 2주간엔 38%로, 3%포인트 하락했다. 이같은 낙폭은 이 연구소가 올 2월부터 매달 동일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나타난 월간 추이 중 가장 큰 것이다. 국내여행은 43%에서 40%로, 해외여행은 39%에서 36%로 떨어졌다.

11월 조사에서, ‘평소 가보고 싶던’ 특정 지역에 여행하고픈 의향을 물었더니 국내ㆍ해외 모든 유명 관광지에 대한 관심도가 일제히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촛불 정국 이후 뉴욕도, 파리도, 가고시마도 가고싶은 마음이 감퇴해 버린 것이다.

인기를 누리던 유통점의 대형가전매장, TV홈쇼핑의 매출은 11월 두자릿수 감소세를 보였다. TV홈쇼핑은 촛불집회가 열리는 11월의 토요일 저녁시간대 매출 감소폭이 30%에 육박했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최근 20세 이상 성인남녀 3004명을 대상으로 올해 송년회 계획 여부를 조사한 결과 ‘송년회를 계획 중’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53.6%로 작년 같은 조사에 비해 6.2%포인트 줄었다.

정치 여건과 사회 환경의 큰 변화가 없는 한, 윤기 빠진 라이프스타일과 국민 정서의 침체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웰빙,문화예술 분야의 침체는 불가피한데, 더욱 걱정인 것은 국민의 정신 건강이다. “참 나쁜 XXX때문에….”라는 원망이 나온다.

다시 금요일이다. 심리학자들은 ‘비상식’ 상황이 계속되면 뭐든 엄두를 내지 않으려는 무력감, 피로감, 우울감이 초래될 수 있다면서, 여유를 갖고 주변 상황과 이슈들을 정리하면서 가벼운 운동과 산책으로 기분을 전환한뒤 차분하게 이슈와 일상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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