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품은 달’처럼 역사 외피만 가져와 김수현이 어떤 왕인지도 모르는 사극멜로는 아예 시청자도 그 부분을 감안하고 본다. 현대복 대신 퓨전 궁중복을 입었다고 생각하고 봐도 된다. 하지만 ‘왕은 사랑한다’처럼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을 끌여다놓고 입체적으로 전개되는 사극의 멜로는 역사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인식 없이는 역사 왜곡의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왕은 사랑한다’는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결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나(임시완)보다 너(임윤아)를 더 사랑해버린 나(임시완)의 이야기’다. 러브라인의 결말은 임시완-임윤아(원산파)가 아닌 홍종현-임윤아(린산파)였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20회나 끌고왔는지, 의아하다.
그래서 역사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왕은 사랑한다’ 이야기의 틀은 대충 다음과 같다.
원나라의 간섭과 간신들로 인해 제대로 국사를 펼치지 못하는 고려말 충렬왕(정보석)과 원의 피가 섞인 그 아들로 무능한 아버지에게 반기를 드는 혼혈 왕세자 왕원(충선왕, 임시완), 반원세력 규합, 국왕의 실정을 간언하는 선각자로 은산(임윤아)의 스승으로 나오는 ‘제왕운기‘ 저자 이승휴, 정동행성 등등.
이런 것들을 너무 피상적으로 훑고 지나가버려 당시 역사와 시대를 구조적으로 파악하기 힘들게 했다. 이 정도를 보여주려고, 굳이 충렬-충선왕 시대의 원작을 가져다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송지나 작가는 이민호, 김희선이 주연을 맡은 ‘신의’에서도 이같은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신의’에서는 공민왕(류덕환)과 덕성부원군 기철(유오성) 캐릭터는 못 살렸지만 강함과 슬픔을 동시에 담아낸 최영(이민호) 캐릭터 하나는 확실히 건졌다.
하지만 ‘왕은 사랑한다’에서는 캐릭터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 악역인 송인(오민석)을 매력적으로 그리려다가 흐지부지해졌다. 역사와 캐릭터가 물려들어가며 시청자가 점점 인물에 대한 몰입도가 생겨야 하는데, 사건을 사건으로 덮어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기자가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느낀 점은, 간신인 밀직부사 송방영(최종환)이 참으로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 정도다.
그렇다면 멜로적으로도 와닿는 부분이 무엇이었을까? ‘왕은 사랑한다’는 일반 멜로물과 달리 남자주인공(임시완)-여자주인공(임윤아)이 아니라 서브남주(홍종현)와 여자주인공이 맺어진다. 임시완과 홍종현은 친구이자 왕(세자)과 신하 관계여서 두 사람이 멜로로 엮일 때는 "우정이냐, 사랑이냐" 하는 문제를 포함해 세심함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 멜로구도에서 중요한 캐릭터인 여자주인공(임윤아)은 아버지가 죽는 등 상황은 있지만 멜로의 감정선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 결말이 나와도 뭔가 개운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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