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횟수 제한·보호법 제정해 달라”…도넘은 악성 민원에 성난 공무원들[취재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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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김포시 9급 공무원 A(39)씨의 빈소가 7일 김포시청 앞에 마련돼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몸이 안 좋으니 집 앞에 죽을 갖다 놔라 하더라. 그 민원인한테 밉보이면 사업이 다 어그러지니 윗사람들도 의전을 당연하게 여기더라. 죽을 배달하는 게 내 일인가 싶어서 힘들었다. 그냥 그만두고 싶은 생각만 든다.”

특별 민원인(악성 민원인)에 시달리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는 입사 2년 차 공무원 황모(32) 씨의 말이다. 황 씨는 “다른 동기가 일하는 사업소에서는 한 사람이 민원만 한 달에 300건씩 넣는다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조금만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폭언과 욕설, 항의 방문이 오니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회사 차원에서의 보호는 대체 어디 있는가”라고 말했다.

8일 경기도 김포시청 등에 따르면 김포시청 소속 공무원 A씨가 악성 민원과 온라인상 마녀사냥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자 공직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공무원들은 해당 공무원을 추모하면서 김포시청 홈페이지 등에 ‘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악성 민원의 도가 지나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악성 민원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나, 해결책 제시보다는 악성 민원인을 ‘역 마녀사냥’하는데 초점을 맞출 뿐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악성 민원. [헤럴드경제 DB]
악성 민원 경험 공무원 ‘80%’…“형식적 대책 아닌 실제적 대책 필요”

한 자치구 민원봉사실 관계자는 “이번 김포시청 공무원, 지난해 서이초·호원초 교사 등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도, 관련 대책보다는 이들을 괴롭힌 사람들을 찾고, 그 사람을 또 공격하고 있다”라며 “민원봉사실에는 악성 민원이 하루가 멀다고 들어오는데,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 소속 대부분의 공무원이 악성 민원을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 공무원노조총연맹(공노총)이 지난해 조합원 706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최근 5년 새 악성 민원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84%에 달한다. ‘월평균 1회 이상 악성 민원을 처리 중’이라는 응답은 70%로 조사됐다.

공무원 노조에서는 “정부의 즉각적인 대책 마련 촉구”를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은 성명을 통해 “정부의 악성 민원 대책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 맞는가”라며 “악성 민원이 발생할 때마다 공무원 노동자 개인이 오롯이 감내하는 경직된 피해자 보호제도부터 당장 개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 왔지만, 악성 민원에 대한 전수조사는커녕, 줄기차게 요구한 민원 처리 관련 제도 및 법령 개선도 차일피일 미뤘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후약방문격인 악성 민원 대책은 필요 없다. 정부는 지금 당장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 노동자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며 “형식적인 기관평가만 난무한 민원 실태조사 말고, 민원 담당 공무원 노동자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직접 현장점검에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이외에도 공무원 노조에서는 ▷민원창구 일원화 ▷공무원 보호법 제정 ▷민원 횟수 제한 ▷공무원 신상정보 비공개 ▷녹음 가능 전화기 배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관계자들이 교육공무직 악성민원 긴급 실태조사 결과 및 민원 고충 사례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악성 민원인 뒷북 대책에 반응 ‘싸늘’…“현장엔 대책 적용 안돼”

정부에서는 악성 민원에 대응하는 여러 방안을 내놨으나 공직 사회 반응은 싸늘하다. 과거 비슷한 대책이 있었음에도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는 2022년 민원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같은 민원을 3회 이상 제출하면 내부 결재를 받아 종결할 수 있다는 내용의 지침을 배포한 바 있다.

다만 이를 두고 세종청사 소속 한 공무원 B씨는 “악성 민원을 내부 종결할 수 있다는 지침이 있다는 것도 유명무실하다”라며 “민원을 문구만 살짝 고쳐서 내면 대처할 방안이 없는데, 민원인이 ‘슈퍼 갑(甲)’이다”라고 지적했다. 행안부는 이번 김포시청 공무원의 극단 선택에 대한 대책으로 이달 말 민원 접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신공격 등 범죄의 유형별 대응 방안을 담은 지침 배포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악성 민원 직원 보호반’을 출범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고용부에 5년 간 있었던 악성 민원은 약 3만 건에 달한다. 지난해 업무 수행 중 직무 유기 등을 이유로 민원인으로부터 공무원이 고소당한 건수도 113건으로 전년 72건 대비 57% 늘기도 했다.

B씨는 “공무원 책임 보험이 있는 것을 알지만 그 누가 그 보험을 신청할 수 있겠는가”라며 “내부에서는 서로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애초에 책임 보험 제도가 판결이 최종 확정돼야 지원해주기 때문에 일단 재판 가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 책임 보험이란 직무수행 중 당한 소송 비용을 3000만원까지 지원하는 제도다. 다만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최종 확정돼야 비로소 지원 대상으로 판정되기 때문에 모든 부담은 개인에게 지워진다.

전문가 “공무원 보호할 수 있는 법률 장치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인사고과 영향 등을 고려해 강경 대응을 꺼리는 공무원 조직 특성을 반영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피해 공무원이 원하면 다른 곳으로 발령해 주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라며 “상대적으로 인사고과 영향 등 내부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공무원 조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는 “공무원들도 보호할 수 있는 법률적 장치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며 “전화상담센터 직원들에게 적용되는 감정노동자보호법 등이 그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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