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증원, 속도 늦춰야”…의사수 추계 연구자들 한 자리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이탈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지난 2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의사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할 때 참고했던 연구 보고서의 작성자들이 국회에 모여 의대 정원 증원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당장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밝힌 상태다. 회의에선 의료 현장에서 벗어난 전공의들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달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7일 오전 10시께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의사 수 추계 연구자 긴급 토론회’에는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오주환 서울대 의대 교수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이들은 정부가 2035년 의사 수가 1만5000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안’을 발표할 때 참고한 3개 보고서의 책임 연구자들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는 ‘2000명 증원’이 아닌 ‘점진적 증원’에 방점에 찍혔다.

홍 교수는 자신의 연구 보고서에서는 2000명보다 더 적은 증원 규모를 언급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연구보고서 결론 부분에 500명, 700명, 1000명 증원의 경우 등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분석해봤는데, 정원을 늘린다면 그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규모가 500~1000명 구간이라고 썼다”며 정부의 보고서 인용이 적절치 않았다고 설명했다.

권 연구위원도 연구 보고서에서 5년 동안 2000명씩 의대 정원을 늘리자는 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권 연구위원은 “다양한 시나리오들 중에서 매년 전년 정원 대비 5~7%로 증원하자는 안을 제안했다”며 “한꺼번에 증원을 많이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교육, 수련 환경의 문제점을 고려해서였다”라고 설명했다.

권 연구위원이 제시한 시나리오는 ▷2024년부터 1000명씩 증원해 총 4000명을 증원하는 안 ▷매년 5% 증원해 2030년까지 4500명 정원을 유지하는 안 ▷매년 7%씩 증원하는 안 ▷매년 10%씩 증원하는 안 등이다.

신 연구위원은 “연구자의 몫이 있고 정부 판단의 몫이 있을 것”이라면서 “2035년을 기점으로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보는 정부 판단에는 동의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2000명씩 5년 동안 1만명을 늘리고 그후에 다시 판단해서 조절하겠다고 하는데, 속도 조절을 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호흡을 길게 가졌으면 한다”며 “어차피 1만명 확충이 목표라면 1000명씩 10년간 증원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연구자들은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미래 의사 수를 추계하기 위해선 거버넌스에 데이터 전문가와 정부, 의료인뿐 아니라 국민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전공의나 의대생 등 의료인을 대표하는 이들과 의료수요자인 국민도 의사 추계할 때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했으며, 권 연구위원은 “의사 수 추계 시 시민단체의 역할도 필요하며 언론인이나 경제학, 인구 전문가의 도움도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현재의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에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오 교수는 “우리가 지금 지역·필수의료 위기를 대처하자고 의료개혁 이야기를 하는데, 의대 증원 외 다른 논의는 너무 늦어지고 있다”며 “홍 교수와 나는 정부와 의료계가 한발씩 물러나서 양방이 수용할 수 있는 500~1000명 범위 내에서 타협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정치적 타협이 아닌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한 논리적 타협을 이뤄졌으면 한다”라고 했다.

홍 교수는 병원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복귀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홍 교수는 “의료 시스템 개선과 관련해 논의할 많은 내용이 있다”며 “환자와 국민을 위해서 일단 복귀하는 게 좋지 않을까. 기다리는 환자를 먼저 치료해주고 미래 의료 문제가 무엇인지 순차적으로 논의해 빠른 시일 내 의료 체계가 정상화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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