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제공] |
[헤럴드경제=강승연·홍승희·김광우 기자] 금융감독원이 2년 만에 또 거액의 횡령 사고가 발생한 우리은행에 대해 조만간 현장검사에 착수한다.
이번 사고는 조작된 대출서류를 이용해 소액의 기업대출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총 100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지점에서 일차적으로 거르지 못하면서 피해 규모가 커졌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거듭된 횡령 사고로 인해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에 총체적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11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금감원은 우리은행 경상도 소재 한 지점에서 발생한 약 100억원의 횡령 사고와 관련한 정확한 경위와 책임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긴급 현장검사를 나갈 예정이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어제 사고 사실을 보고 받았다. (횡령)금액이 크기 때문에 한번 살펴봐야 할 것 같다”며 현장검사를 나가겠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전날 경상도 소재 한 지점에서 발생한 약 100억원의 횡령 사고와 관련한 정확한 피해 금액과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지점 직원 A씨는 올해 초부터 대출 신청서와 입금 관련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고객 대출금을 빼돌린 뒤 해외 선물 등에 투자했다가 60억원 가량 손실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빼돌린 대출금은 기업여신에 해당한다. A씨는 조작된 서류를 이용해 3~6개월 만기의 기업 단기여신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금은 대부분 10억원 미만으로, 소액의 대출 횡령을 반복해 사고금액이 총 100억원에 달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특별검사팀을 해당지점에 급파해 상세 사고 경위 파악과 신속한 횡령금 회수에 전력 이며, 수사기관과 협조 및 강도높은 자체감사를 통해 정확한 횡령금액과 상세 사고 경위 등을 파악 중으로 철저한 조사로 대출 실행 과정의 문제점을 파악해 유사 사례의 재발을 방지할 것"이라며 "관련 직원에 대한 엄중 문책과 전 직원 교육으로 내부통제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A씨의 비위 사실이 적발된 것은 우리은행 자체 내부통제 시스템을 통해서였다. 본점 여신감리부 모니터링 결과 대출 과정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된 것으로, 현재 특별검사팀을 해당 지점에 파견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A씨는 은행 조사가 시작되자 경찰에 자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단독으로 횡령을 저질렀는지, 내부에 조력자가 있었는지 등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직원 1명이 심사·집행을 하기 어려운 기업대출 구조를 고려하면 내부적으로 ‘짬짜미’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은행은 이번 횡령 사고에 휘말리게 된 기업들의 피해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A씨가 허위의 기업을 만들었을 가능성보다 기존 거래 기업의 명의 등을 도용해 대출을 받았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점 특성상 중소기업이 더 많았을 만큼, 더욱 신중히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우리은행은 2022년에도 700억원대 횡령 사고가 일어난 사실이 드러나 금감원의 현장검사를 받는 등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당시 우리은행 기업개선부서에 근무하던 직원과 동생이 2012~2020년 707억원의 은행 자금을 빼돌려 주가지수옵션 거래 등에 쓴 혐의로 기소돼 올 4월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15년형과 12년형이 확정됐다. 두 사람은 범죄수익 은닉 혐의로 최근 1심에서 징역 4년과 3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이 같은 대형 금융사고는 우리은행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경남은행에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관련 30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도 NH농협은행과 KB국민은행에서 부동산 가격 고가 감정 등으로 인한 과다 대출로 수백억원대 배임사고가 잇따라 벌어졌다.
이에 금감원과 은행권은 2022년 말 ‘은행 내부통제 제도 개선안’을 도입한 데 이어 지난해 말 대형 금융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은행 내부통제 혁신방안 개선안’을 마련했다. ▷장기근무자 인사관리 등 장기과제 이행시기 단축 ▷준법감시인 자격요건 강화 등 강화된 내부통제 방안을 조기 안착하기 위한 조치였다. 우리은행은 전 직원이 내부통제 관련 부서를 1년 이상 거쳐 가도록 인사제도를 개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사고를 막지 못한 데 대해 일각에서는 기업여신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임 감사제도’ 등 내부통제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여신은 지점장과 전임 감사가 서류를 중복 확인하게 돼 있는데, 개인의 횡령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창구가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모든 대출서류는 지점장과 전임감사가 중복확인을 하게 돼있는데 이같은 시스템에서 개인의 횡령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의문”이라며 “지점에서 나타난 모든 사건은 지점장 책임이며 사고를 알지 못했다면 오히려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점에서 나타나는 횡령을 내부통제 시스템으로 모두 걸러내기엔 무리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대출금 횡령과 같은 사고는 개인의 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은행의 시스템상 허점을 얼마든지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문제 해결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기업여신의 경우 직원이 직접 나가는 일이 많고, 또 고객이 와서 돈을 갚았는지 여부도 지점장이 미처 알지 못할 수 있다”며 “영업점에서 나타나는 ‘완전 범죄’를 시스템으로 막는 게 가능한 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달 중 주요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간담회를 앞두고 또다시 대규모 횡령 사고가 발생한 만큼, 이 자리에서 은행권의 내부통제 관리 강화에 대한 이 원장의 당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