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티몬·위메프 정산 및 환불 지연 사태'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서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를 빚은 티몬과 위메프의 모기업 큐텐이 내부 절차를 지키지 않고 두 회사의 자금을 사용한 정황이 드러냈다.
3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큐텐은 지난 4월 11일 위시 인수 자금 명목으로 티몬에서 200억원을 대여했다. 만기는 1년, 금리는 4.6%였다..
당시 큐텐의 자금 대여는 북미 및 유럽 기반 온라인 쇼핑 플랫폼 위시의 인수대금 납부 기한을 앞두고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큐텐은 지난 2월 1억7300만달러(약 2300억원)에 위시를 사들였다.
하지만 적합한 내부 승인 절차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대여금 집행 문서의 기안일은 지난 4월 11일이었으나 류광진 티몬 대표의 최종 승인이 난 것은 나흘 뒤인 15일였다. 사후 결제가 벌어진 것이다.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30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티몬·위메프 정산 및 환불 지연 사태'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
같은 일은 올해 초에도 다시 발생했다. 큐텐은 지난 1월 11일 금리 4.6%로 1년 만기 자금 50억원을 티몬에서 또 대여했다. 이 당시에도 대표의 승인은 사후에 이뤄졌다. 대여가 집행된 날로부터 19일이나 지난 1월 30일에야 이뤄졌기 때문이다.
두 건 모두 결재 단계는 기안자부터 대표까지 4단계를 거쳐야 한다. 결재자는 류 대표를 제외한 기안자와 2차 승인자인 재무팀장, 3차 승인자인 재무본부장까지 모두 큐텐의 기술 부문 자회사인 큐텐테크놀로지 소속이었다.
큐텐은 2022∼2023년 티몬과 위메프를 차례로 인수한 뒤 재무와 기술개발 조직을 해체하고, 해당 기능을 큐텐테크놀로지가 담당했다. 큐텐테크는 사실상 큐텐 한국 자회사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반적인 흐름을 보면 큐텐 측이 이런 자금 이동을 사전에 류 대표와 상의하지 않았거나 류 대표가 대여금 집행 시점에 이를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티몬·위메프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빌딩에서 열린 티몬.위메프 피해 입점 판매자(셀러) 대책회의에 참석한 한 판매자가 머리를 쥐고 있다. [연합] |
실제 류 대표는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가 마련한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 관련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해 “재무 관련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티몬과 위메프 안팎에서는 두 회사 대표조차 정확한 이전 자금 규모를 알지 못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티몬과 위메프에서 큐텐으로 빠져나간 자금 일부가 판매자들에게 정산해줘야 할 결제 대금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구 대표는 전날 국회 정무위 긴급 현안 질의에서 “티몬과 위메프 자금 400억원을 위시 인수대금으로 썼으며 이 중에는 판매대금도 포함됐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해당 자금을 한 달 안에 바로 상환했다"며 "이는 이번에 발생한 정산 지연 사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명하며 구체적인 사용처는 밝히지 않았다.
검찰 수사에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임의대로 자회사 자금을 빼 쓴 사실이 확인될 경우 횡령·배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정무위 긴급 현안 질의에서 “큐텐 자금 추적 과정에서 강한 불법 흔적이 드러나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주요 대상자 출국금지 등을 요청했다”고 했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를 중심으로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