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칼국수·곱창 사라지니…기승 부리는 ‘대마맛’ 담배[르포]

서울 중구 충정로에 있는 한 외식업체에서 ‘마약’이라는 단어를 써서 된장찌개를 광고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헤럴드경제=김도윤 수습기자] 마약범죄로 인한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경찰 당국이 마약에 대한 특별 단속을 실시하고 있는 상황과 대조적으로 ‘마약’이라는 단어를 음식점 상호나 식품 광고에 사용하는 사례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마약류 표시·광고 규제 대상에 담배는 제외돼 있는 탓에 ‘대마향’을 구현했다는 액상 전자담배까지 시중에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제8조의2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장과 각 지자체장은 식품 영업자에게 마약류 및 유사 표현을 사용하는 표시·광고를 하지 않도록 권고할 수 있다. 올해 7월 이 같은 개정법 시행에 따라 김밥·음료 등의 식품에는 ‘마약’이라는 문구 사용이 금지됐다. 다만 임의 규정으로 강제성이 없는 탓에 현장에선 여전히 ‘마약’이라는 문구를 활용한 홍보 마케팅을 하고 있어 관련 규제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식품안전나라 업체검색자료에 따르면, 서울·경기 지역에서 상호에 ‘마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업체는 총 75곳으로 집계됐다. 헤럴드경제는 실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서울에서 마약 상호를 유지하고 있거나 식약처 권고 조치 이후 상호를 변경한 가게를 찾았다.

서울 강남에서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지난 8월경 ‘마약’ 문구가 들어간 가게 상호를 바꿨다. 김도윤 수습기자

강남에서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지난 8월경 가게 상호를 바꿨다. A씨는 “맛있다는 비유를 임팩트 있게 하기 위해 사용하던 상호인데, 요즘 사회적 분위기에서 워낙 마약이 문제가 되다 보니 바꾸게 됐다”며 “배달 플랫폼에서도 마약이 들어가면 가게 노출을 안 시켜주고, 최근에 지자체에서도 권고보다는 강제에 가깝게 규제를 하고 있어서 다른 지점들까지 이름을 전부 바꾸진 못했지만 본점은 간판 이름을 바꾼 상태”라고 말했다.

처음 몇 달은 상호를 변경한 탓에 고생을 했다는 A씨는 “오랫동안 써오던 상호를 변경하고 나서 처음엔 매출에 차이가 컸다”며 “리뷰 댓글을 통해 기존 ‘○○칼국수’에서 ‘△△칼국수’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알렸다. 칼국수 말고도 족발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다른 가게들과 통일성 있는 이름을 고민하다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가게를 찾은 손님 김모(34) 씨는 “집에서 가끔 배달시켜 먹기도 하는데, 처음엔 가게 이름이 바뀐 줄 몰랐다”며 “맛은 변하지 않아서 이름이 바뀌고도 종종 찾는다”고 했다. 이어 “옛날엔 그런 줄 몰랐는데 지금은 마약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굳이 마약이라는 비유를 쓸 이유는 없어 보인다”며 “처음이야 가게 이름 보고 찾지, 맛이 있고 없고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서울 용산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B씨도 지난 6월경 가게 상호를 변경했다. 김도윤 수습기자

용산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B씨도 지난 6월경에 상호를 변경했다. B씨는 “사업자가 가게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정하는 것은 사업자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처음에는 마약 문제와 마약 상호 사용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불만이 있었다”며 “가게를 옮기면서 새롭게 위치 변경을 하고 사업 등록을 하려니까 기존의 이름을 더 이상 쓰지 못한다고 얘기를 들어 2년 정도 쓰던 가게 이름을 6월부터 변경해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약처는 국민의 일상에 마약 용어를 긍정적, 친화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을 차단하고 마약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지자체와 협업해 식품업체 위생 점검 시 용어 변경을 권고하고, 지자체가 식품접객업소 간판과 메뉴판 교체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현재 마약 상호를 유지하고 있는 외식업체 가운데 대부분은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곳으로, 순차적으로 상호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마맛 담배?…무분별한 담배 광고 = 이처럼 음식점 등에 마약 상호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 노력은 권고 등을 통해 일정 정도 이뤄지고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담배’였다. 현재 온라인에선 대마의 맛과 향을 표방한 ‘액상 전자담배’가 버젓이 판매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실제 대마 흡연 증상을 나타내는 용어들까지 사용하며 ‘대마향 담배’를 광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개정된 식품표시광고법에 따라 영업자 등에게 마약류 및 이와 유사한 표시 또는 광고를 하지 않도록 권고 조치하고 있지만, 마약류 표시·광고 규제 대상이 식품으로만 한정돼 있어 담배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0일 22대 국회에서는 담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온라인에서 버젓이 대마향이 광고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모습 [대마향 액상 판매 홈페이지 캡처]

특히 현행법상 ‘연초 잎’을 원료로 피우거나 흡입하기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을 담배로 규정하고 있지만, ‘연초 잎’이 아닌 ‘합성 니코틴’을 이용한 전자담배는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시중에 유통 중인 ‘대마향 구현 액상담배’ 등이 마약 투약의 관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22대 국회에선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반영한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지난 9월 20일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은 담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발의안에 따르면 담배의 포장이나 광고에 마약류의 명칭 또는 그와 유사한 용어, 문구 등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마약 마케팅을 자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청소년들이 즐겨 먹는 식품에 마약 용어가 남용되면서 마약을 친숙하게 여기고 경계심이 낮아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마약을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할 경우 마약에 대한 경계심이 흐려질 수 있다”며 “마약이 ‘맛있다’ 혹은 ‘좋다’라는 감정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정보성 메시지가 아닌 광고성 메시지로 소비자에게 마약을 친화적으로 인식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인지 발달이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이 음식과 같은 긍정적 매개체를 통해 마약이라는 단어를 접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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