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로이터]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와 이에 따른 반대급부로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추진해온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이런 방침을 포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복수의 사우디와 서방 관료는 사우디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대신 좀 더 낮은 수준의 군사협력 협정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새로운 협정에는 양국 간 합동 군사 훈련과 방위 기업 간 협력 강화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새로운 안에 따라 미국은 훈련과 병참, 사이버 안보 지원 등을 통해 사우디에서 존재를 강화하고 미사일 방어력과 통합 억지력 강화를 위해 패트리엇 미사일 대대 배치 등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외국의 공격 상황에서 서로 보호할 것을 의무화하는 상호방위조약 성격은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사우디 싱크탱크인 걸프연구소의 압델아지즈 알 사거 소장은 “당초 추진했던 것처럼 일본이나 한국이 체결한 것과 유사한 형태의 방위조약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가 이처럼 방향을 튼 것은 중동 정세가 방위조약 체결에 유리하지 않게 흘러가고 있어서다.
사우디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인정해야 국교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극우 세력과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권 여론이 좋지 않아 사우디가 조건을 완화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수교에 공을 들여온 조 바이든 행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이 임박했다는 점도 상황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트럼프 당선인과 가까운 사이이기는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집권 1기 때 추진했던 중동 평화 구상은 사우디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다.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분할되지 않은 수도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이 구상에 팔레스타인은 강하게 반발해왔다. 그 때문에 미국 의회의 인준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낮은 수준의 군사협력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 없이는 미국 의회 인준은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사우디가 바이든 정부 하에서 협정을 마무리 지을지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을 기다릴지는 불확실하다.
트럼프 당선인이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국교 정상화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런던 정경대의 중동 전문가 파와즈 게르게스 교수는 “트럼프가 국교 정상화의 대가로 가자 휴전을 약속하는 한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실질적인 양보를 하도록 하지 않고도 팔레스타인 국가를 지원하겠다고 잠정적으로 약속하는 방향으로 국교 정상화를 추진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