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여수-경남통영 ‘삼도수군통제영’ 원조 논쟁

시민단체 “최초 삼도수군통제영 여수”…통영시의회 “역사 왜곡이다” 반발

‘남쪽 왜를 진압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여수 진남관.


통영시에 소재한 삼도수군통제영 건물. [홈페이지 사진]


[헤럴드경제=박대성 기자] 조선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놓고 벌어진 전남 여수와 경남 통영시의 역사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삼도(전라·경상·충청도) 수군(해군)을 통솔하던 본부가 통영에 있었다는 통설에 여수시가 반기를 들며 역사 논쟁에 불을 붙이는 형국이다.

향토 역사문화단체인 여수종고회(鐘鼓會·쇠와북)는 19일 자료를 배포하고 “전라좌수영의 수군이 본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작전상 한산도(통영)에 진을 치고 주둔하고 있었다하여 그곳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이라고 통영시에서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단체의 주장은 최근에 경남 통영시의회 차원에서 ‘전남과 여수시의 최초 삼도수군통제영 침탈 행위 및 역사 왜곡 중단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는 소식에 대한 반발 차원이다.

여수종고회는 “임진왜란 시기 여수는 전라좌수영 겸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이었다”며 선조가 내린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 임명장에 해당하는 교서(敎書)를 그 첫 번째 근거로 제시했다.

이순신의 편지글인 답현지평덕승(答玄持平德升)의 내용에 ‘한산도로 나아가 진을 쳤다’는 구절로 미뤄 한산도는 전라좌수영 겸 삼도수군통제영의 진(陳)이었다고 이 단체는 주장했다.

단체는 “이순신은 한산도에 있는 군사 시설물을 총칭해 진채(陳寨)라고 표기하기도 했다”며 “한산도 건물이 정식으로 인가된 관청 건물이 아니라 진을 운영하기 위해 임시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려준다”고 해석했다.

즉, 교서 취지가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에게 삼도수군통제사를 겸직하도록 한 만큼 통제영이 여수가 맞고 전라좌수영이 경상우수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여수시는 보수공사 중인 국보 제34호 ‘진남관(鎭南館)’의 상반기 내 재개관을 계기로 역사 바로잡기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에 반해서 통영(충무)시는 ‘통제영’에서 지명이 유래됐듯이 한산도는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의 본영이고 여수는 전라좌수사의 본영이라는 주장이다.

통영시는 1592년 8월12일(음력 7월 6일) 이순신이 한산대첩에 승리한 뒤 선조가 교지를 내려 이순신에게 전라좌수사와 삼도수군통제사를 겸직하도록 한 사실은 바뀔 수 없는 사실이라는 설명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여수~남해~통영)을 공유하고 있는 양 도시가 설전을 벌이면서 역사 논쟁이 자칫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할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여수시의회는 조만간 여수, 통영이 함께하는 학술대회도 제안할 예정이어서 양측의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포털에는 현재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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