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미정상관계 나쁘지 않아”-백악관 “대화 열려 있어”…韓 패싱 우려

김여정, 韓 향해선 “마주 앉을 일 없어”
“대북기조 빨리 정해 미국과 협의해야”

지난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를 하는 모습 [AFP]

[헤럴드경제=문혜현 기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두고 “개인적관계가 나쁘지 않다”고 발언한 뒤 미국 백악관이 곧바로 대화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북미 정상간 대화 분위기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북한이 우리나라를 향해 “마주 앉을 일이 없다”고 말한 뒤 하루만에 나온 것으로, 사실상 대화상대로 한국을 패싱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김 부부장은 ‘조미(북미)사이의 접촉은 미국의 ‘희망’일 뿐이다’라는 담화에서 “나는 우리 국가수반과 현 미국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전했다.

이번 김 부부장의 미국 관련 담화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이어진 여섯 번째 공식 입장이지만, 전날 한국 정부를 향한 입장을 낸 후 연달아 나왔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미국과 탐색전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협상 의지를 보였다는 것이다.

김 부부장은 특히 비핵화 협상을 두고 “상대방에 대한 우롱으로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면서 “미국이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패한 과거에만 집착한다면, 조미 사이의 만남은 미국 측의 ‘희망’으로만 남아있게 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비핵화 요구에 선을 긋고,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을 대화의 조건으로 내세운 셈이다. 김 부부장은 “지난 조미대화에 대한 미국 측의 일방적 평가에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고 싶지 않다”면서 “우리 국가의 불가역적인 핵보유국지위와 지정학적환경도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인정은 앞으로의 모든 것을 예측하고 사고해 보는 전제로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미국의 협상 구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어 김 부부장은 “핵을 보유한 두 국가가 대결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결코 서로에게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최소한의 판단력은 있어야 할 것”이라며 “그렇다면 그러한 새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다른 접촉 출로를 모색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미국은 여전히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 가능성을 재확인했다. 백악관 당국자는 2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소통하는 데 여전히 열려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김상환 헌법재판소장과 오영준 헌법재판관에게 임명장 수여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

이를 두고 북미 대화 가능성이 일부 나타나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협의할 틈이 좁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로 전날 북한이 우리 정부와 관계 회복에 대한 거센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적극 차단에 나섰기 때문이다. 김 부부장은 전날 ‘조한(남북)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담화에서 “우리는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고 짚었다.

이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대북정책에 대한 북한의 첫 공식 반응으로, 우리 측의 화해 제스처에 사실상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가가 나왔었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모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관계 복원 과제가 순탄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김 부부장의 두 번째 담화와 관련해 “한미는 향후 북미대화를 포함, 대북정책 전반에 관해 긴밀한 소통과 공조를 지속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미 양국은 한반도 평화 및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다”면서 “정부는 앞으로 평화 분위기 안에서 남북간 신뢰를 회복하고 북미회담 재개를 촉진하는 여건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미국과 우리나라 모두 정확한 대북정책 기조가 세워지지 않은 만큼 하루빨리 의견을 모아 협의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이 따른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김 부부장) 담화가 가장 직설적이고 명확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바로 전달한 것”이라며 “정부가 정책 방향을 정확하게 정하고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미국의 공식 대북 정책이 나오기 전까지 한국과 서로 같은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앞으로 한미 동맹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외교·안보 소관 부처에서 먼저 한미 연합훈련 조정 등 논의가 나오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이 대통령에 건의 의사를 밝혔고,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한미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신중하게 상황을 살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은 “이 정부는 북미 관계 개선을 지지하고 지원한다고 밝힌 맥락에서 북한은 지금이 기회라고 보는 것”이라며 “정부가 각 부처와 상당한 교감 하에 발언을 조율하며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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