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오 “스스로에 대한 물음표들이 작은 느낌표로 바뀐 순간이었죠”

35세에 또다시 PGA 도전 나선 김비오

2부 투어에서 선전하며 파이널 진출

세번째 도전서 ‘외로움’이 ‘희망’으로

시간은 내 편 아니지만 계속 도전할 것

SNS에 ‘개그감 충만’ 골프 영상 게시

디섐보처럼 팬과 적극 소통하고 싶어

 

서른다섯의 나이에 또한번 미국 무대를 두드리는 김비오는 25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루고 싶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나이를 이유로 도전을 망설이고 싶진 않다”고 했다. 조범자 기자

[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 “사실 좀 의아했어요. 콘페리(PGA 2부) 투어 랭킹 147위 치고는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아서요, 하하. 팬분들이 많이 좋아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간판스타 김비오(35)의 얼굴엔 새로운 에너지가 충만했다. 미국에서 짧은 골프 드라마 한 편을 쓰고 돌아온 그였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생각지도 못한 미국 도전 기회를 잡았고, 실낱같은 희망을 한 주 한 주 이어나가 마침내 풀시드를 노릴 수 있는 파이널 무대까지 진출했다.

그는 결코 들뜨지 않았지만 “과거에 살아남지 못했던 미국 투어에서 조그마한 빛을 본 느낌”이라고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김비오는 25일 경기도 수원 한 카페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미국에 갈 때는 그저 덤덤했다. 7월 한 달 간 훈련했던 걸 중간점검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한 주 만에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에 비행기 티켓도 그에 맞춰 끊었다. 그런데 3주간 경기를 하고 나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콘페리 투어 출전권은 우연히 손에 쥐었다. KPGA 투어에 배당된 쿼터를 받은 지난해 신인왕 송민혁이 허리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하면서 김비오에게 기회가 왔다. 투어 9승의 베테랑이자 서른다섯의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그는 주저없이 미국행을 택했다.

그는 지난 4일 끝난 유타 챔피언십에서 공동 22위에 올라 다음 대회 출전 자격을 얻었고, 11일 끝난 피너클 뱅크 챔피언십에선 공동 28위로 또다시 다음주 출전 기회를 이어갔다. 18일 앨버트슨스 보이시 오픈은 공동 33위로 마무리하면서 포인트 랭킹 147위에 랭크, 상위 156위까지 주어지는 파이널 1차전 출전권을 획득했다. 3주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김비오가 4일(한국시간) 끝난 콘페리 투어 유타 챔피언십 최종라운드 18번홀에서 버디를 잡은 뒤 갤러리 환호에 답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예전에 미국에서 뛰었을 때(2011~2013년, 2018년) 큰 성적을 낸 게 없다 보니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도 했어요. 그런데 지난 3주간은 제 마음 속에 있던 물음표들이 작은 느낌표로 바뀐 순간이었어요. 내가 가는 방향이 틀리진 않구나, 잘 가고 있구나 하는. ‘콘페리 투어는 외롭다’는 부정적인 마음도 이젠 ‘희망’으로 바뀌었죠.”

아이언샷이 한층 단단해지기도 했지만 미국 투어에서 처음으로 팀을 꾸린 효과를 봤다. 구희준 웅빈매니지먼트그룹 매니저와 김용현 캐디, 오재홍 트레이너와 함께 현지 적응력과 회복력을 키웠다. 3주간 3000㎞를 번갈아 운전하면서 햄버거로 끼니를 해결하는 강행군이었지만 힘든 줄 몰랐다고 했다.

지난해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번아웃은 김비오를 크게 변화시켰다. 프로 생활 15년 만에 처음으로 “코스에서 무력감을 느꼈다”는 그는 11월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별다른 계획도, 뚜렷하게 한 것도 없었다. 여행이라고 해봐야 1박2일 그랜드캐년에 간 게 전부. 매주 가족과 집 근처 디저트 카페에 갔던 추억 정도다. 하지만 평범한 남편과 아빠로 산 4개월은 그에게 온전한 해방감을 줬다. 골프에 대한 우선순위도 바뀌었다. “과정이 착실하게 잘 준비되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스며들었고, 비로소 그를 옥죄었던 승부의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올 상반기 성적을 보면 전혀 김비오스럽지 않아요.(웃음) 전 우승도 했다가 컷탈락도 했다가 기복이 심한 편인데, 올해는 3위 한 번에 10위권 두 번 등 큰 부침이 없었어요. 우승이 없어 속상하기보다는 오히려 저의 숙제였던 ‘꾸준함’이 생겨서 흡족해요.”

김비오가 이달 콘페리 투어에 출전하면서 이승택(왼쪽)과 김성현을 인터뷰하는 영상을 SNS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김비오 SNS]

요즘 김비오의 투어 라이프에 활력을 불어넣는 건 SNS를 통한 팬들과의 소통이다. 그는 “번아웃을 극복하니 감사하지 않은 게 없었다. 특히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은퇴 후가 아닌 지금 바로 돌려 드리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골프를 좀더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영상을 찍어 올린다”고 했다.

최근 미국 대회 중에도 콘페리 투어에서 뛰고 있는 이승택과 김성현을 직접 인터뷰한 영상을 올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스스로 “말하는 걸 너무 좋아하는 수다쟁이”라는 김비오의 SNS엔 냉정한 승부사 이미지를 깨는 반전 재미도 숨어 있다. “개그감과 예능감이 장난 아니다”는 댓글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브라이슨 디섐보(미국)처럼 골프도 잘 치고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그는 유튜브 계정도 만들었다. 채널 이름은 ‘다방면 김프로’. 다방면에서 잘 하고 싶은 염원을 담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김비오는 오는 28일 재개되는 KPGA 투어 하반기 대회를 2주 연속 치른 뒤 다시 미국 도전을 이어간다.

9월 12일 개막되는 파이널 1차전 시몬스 뱅크 오픈을 마치고 콘페리 랭킹 144위 내에 들면 2차전에 나설 수 있다. 상위 75명이 출전하는 최종 4차전 진출까지 성공하면 내년 콘페리 투어 풀시드를 획득하게 된다. 세계랭킹 30위 꿈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

“3주 전에 그랬던 것처럼 제가 가진 기회를 잘 살려보자는, 좀 단순한 생각으로 가려고 합니다. 파이널은 어차피 죽기 살기로 하는 거니까요. 결과가 어떻든 저는 계속 PGA 투어에 도전할 겁니다. 시간이 내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이 때문에 주저하고 싶진 않아요. 세계적인 선수들과 큰 무대에서 겨루고 싶다는 ‘열린 결말’에 대한 희망이 아직 있거든요.”

김비오가 콘페리 투어 앨버트슨스 보이시 오픈 1라운드 12번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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