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5승 포함 LPGA 15승
고관절 수술과 퍼팅 입스 겹쳐
왼손 퍼팅으로 바꾼 뒤 살아나
LET 위스트론 레이디스 오픈 우승
1년만에 1000계단 점프 ‘259위’
“나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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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쩡야니가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위스트론 레이디스 오픈에서 11년 만에 정상에 오른 뒤 우승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LET SNS] |
[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 “마지막 홀까지도 스코어보드가 맞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이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한때 천재골퍼로 불렸다가 끝모를 추락을 했던 여자골프 전 세계랭킹 1위 쩡야니(36·대만)가 무려 4306일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미국 골프닷컴은 “쩡야니가 길고 긴 여행에서 돌아왔다”며 골프 여제의 드라마같은 귀환을 반겼다.
28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따르면 쩡야니는 지난 26일 대만 타이베이 인근 선라이즈 골프 앤드 컨트리클럽(파72)에서 끝난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위스트론 레이디스 오픈에서 정상에 올랐다.
쩡야니가 공식 대회에서 우승한 건 2014년 1월 대만 여자프로골프투어 타이퐁 레이디스 오픈 이후 11년 9개월 만이다.
악천후로 대회가 36홀 경기로 축소된 가운데 첫날 보기 없이 버디 9개를 몰아치며 단독선두에 오른 쩡야니는 이날 최종일에도 버디 8개와 보기 3개를 묶어 5타를 줄이며 최종합계 14언더파 130타를 기록, 아멜리아 가비(뉴질랜드)를 4타 차이로 넉넉하게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우승이 확정된 후 동료와 친구들을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 쩡야니는 “이 트로피를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모른다”며 “고향에서,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우승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절대로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쩡야니는 마지막홀 그린에서, 기자회견에서, 그리고 백을 챙기다가도 계속 울었다. 그럴 때마다 대만 선수들과 팬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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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쩡야니가 11년 만의 우승 후 감격에 북받친 듯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LET SNS] |
그야말로 지옥에서 돌아온 순간이었다. 불굴의 투지가 있었기에 맛볼 수 있는 영광의 순간이었다.
쩡야니는 LPGA 투어를 주름잡던 세계 최고의 선수였다. 15세였던 2004년 미셸 위(미국)를 꺾고 미국 여자 퍼블릭 링크스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2008년 LPGA 투어 신인왕, 2010년과 2011년에는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불과 4년 사이에 메이저 대회 5승을 포함해 15승을 휩쓸었다. 109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지켰다.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비견됐고 ‘여자 타이거 우즈’로도 불렸다.
그러나 2012년 3월 기아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한순간에 무너졌다. 2012년 초반 5개 대회 중 3개 대회에서 우승했던 쩡야니는 그해 5월 LPGA 챔피언십에서 공동 59위를 기록하며 시즌 첫 20위권 밖의 성적을 내더니 5개 대회 연속 50위권 밖에 머물며 고꾸라졌다.
그의 몰락은 갑작스러울 뿐 아니라 분명한 이유도 없어 골프계에선 ‘미스터리’로 통할 정도였다.
2019년에 출전한 LPGA 투어 5개 대회 모두 컷 통과하지 못했고, 2년 만에 복귀한 2021시즌엔 9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과 실격 처리 쓴맛을 봤다. 2024시즌에서도 출전한 11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다.
그 사이 고관절 부상으로 두 차례나 수술대에 오르고 퍼팅 입스까지 찾아왔다. 퍼터를 잡는 순간 손이 벌벌 떨려 정상적인 스트로크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쩡야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부진의 터널에서 나오기 위해 갖은 애를 쏟았다. 2년 간의 강제 휴식기를 갖기도 했고 명상 수련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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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쩡야니가 지난 5월 블랙 데저트 챔피언십에서 왼손 퍼팅을 하는 모습 [게티이미지] |
마침내 올해 초 돌파구를 찾았다. 왼손 퍼트였다. 스윙 코치인 브래디 리그스가 그에게 왼손 퍼팅을 제안했다. 쩡야니는 처음엔 망설였지만 더이상 잃을 게 없다는 판단에 받아들였다.
왼손으로 퍼팅을 하면서 숏퍼팅에 대한 두려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는 “왼손 퍼트로 바꾼 첫 대회에서 5피트(1.5m) 이내 퍼팅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다시 좋은 골프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쩡야니는 2025시즌 7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으나 8월 메이저대회 AIG 여자오픈에서 6년 10개월 만에 컷 통과에 성공했다. 메이저 대회로는 8년 만의 3라운드 진출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홈코스에서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년 전 1275위였던 쩡야니의 세계랭킹은 28일 발표된 최신 랭킹에서 259위가 됐다. 1년 만에 1000계단 이상 뛰어 올랐다.
지난 6월 예선을 거쳐 US여자오픈에 출전한 당시 쩡야니는 끝없는 나락에도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는 그가 골프사에 기록될 만한 부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힘이었다.
“내 열정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매번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에게 증명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은 것 같아요. 내가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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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쩡야니 [게티이미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