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에게 물었다…조명우 “한 시즌 3승? 그건 몰랐네요”

경기에서 승리한 뒤 활짝 웃고 있는 조명우


[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 3쿠션 세계랭킹 1위 조명우(31·서울시청)가 기적의 무대를 앞두고 있다. 오는 12월 7~13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리는 3쿠션 월드컵이다.

이 대회에서 조명우는 월드컵 통산 4승에 도전한다. 달성시 한 시즌 3승이라는 위업을 거둔다. 7월 포르투갈 포르투 대회, 이달 광주 대회 등 월드컵 2승과 전국대회 하반기 4승으로 커리어 하이를 달리고 있는 그의 시즌 최종전을 향해 당구계의 시선이 집중된다.

내달 8일 출국하는 조명우의 컨디션을 망치지 않도록 25일 가급적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또 우승하면 4승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죠.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열심히 도전하면 되니까 크게 부담되는 건 아닙니다. 한 시즌 3승이 된다고요? 그건 미처 생각 안 해 봤네요.”

“이집트 월드컵 시차적응 문제없다…집중력 유지에 최선”


월드컵은 무려 128강이 겨루는 극심한 경쟁의 무대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토너먼트 중 삐끗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우승은 신이 내려준다고 할 정도다. 해외 개최가 많아 한국 선수들은 시차 적응, 경비란 핸디캡도 안고 싸우게 된다.

그나마 조명우를 포함해 랭킹 14위 안의 시드권 선수들은 32강부터 투입되고 항공, 숙박료를 지원받는다. 그렇다 해도 막강한 선수들만 살아남은 31명과 리그전과 토너먼트를 벌여 최후 생존자가 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조명우는 한국시간 8일 출국 후 12일(현지시간) 오전 10시 이집트 아흐만 마후무드 선수와 대결이 이미 잡혀 있다. 그는 “하도 많이 외국 대회를 다녀서 시차적응 문제는 전혀 없다”며 “경기 내내 집중력이 일정하지 않은 걸 보완해서 계속 집중하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담을 주지 않고자 불쑥 가벼운 이야기로 전환했다. 조명우의 인사성과 감추지 못하는 표정을 화제로 삼았다. 요행수로 행운의 득점이 나온 경우 그는 진중한 표정으로 허리를 깊숙이 숙여 상대에게 사과 의사를 전달한다. 그의 영향으로 원래 목례만 ‘까딱’하거나 손만 한번 들어보이던 외국 선수들도 웃으며 이런 동작을 따라하곤 한다.

요행 득점 때 허리 숙여 인사 습관…해외 선수들도 따라해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인사하는 게 습관이 돼서요. 손을 들어 인사하는 게 불편하다고 할까요. 친구나 동생들이랑 경기중에서만 손드는 제스처를 써요. 의도 없이 몸에 배인 동작이에요.”

31세 천재 플레이어의 이런 예의바른 모습이 정장년층 팬들을 “역시” 하며 흐뭇하게 만들곤 한다. 막내동생 같은 귀엽고 편안한 마스크와 어우러져 인기의 비결이 되고 있다. 당사자는 “처음 듣는 소리”라지만 젊은 여성 팬들도 은근히 많다.

조명우는 무표정으로 경기하다가도 득점에 아쉽게 실패하면 눈을 살짝 감고 찡그린다. 포커페이스가 일상인 당구의 세계에서 이례적으로 비친다. 그러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경기가 치열한 양상일수록 그의 얼굴은 더욱 빨간색 당구공처럼 변한다.

그는 “많이 (그런 표정을) 한다고는 안 느끼지만 주변에서 대부분 그렇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더라”면서도 “기량에는 지장없다. 아쉬워 하는 표정은 나도 모르게 하는 거라 자제가 잘 안 된다”고 털어놨다. ‘인간적인 모습이라서 좋아하는 팬들이 있다’는 말에는 “정말이냐”고 웃으며 반문했다.

상기된 표정으로 스트로크 하는 조명우


‘조화백’은 실속파…“끌어치기 쇼맨십 아니다”


조명우는 요즘 ‘조화백’으로도 불린다. 해설자도 상상하지 못 했던 ‘예술구’ 같은 화려한 득점 진로를 자주 그려내서다. 수구를 뒤로 완전히 끌어쳐서 옆돌리기 대회전을 돌리거나, 멀리 떨어진 1적구를 맞힌 뒤 엄청난 분리각을 만들어 뒤돌리기를 하는 식이다. 파워와 속도, 정확한 스트로크가 결합돼야 가능한 어려운 샷인데, 심지어 그게 높은 확률로 득점된다.

일각에선 “쇼맨십”이라거나 “상대를 ‘석죽이려고’ 그런다”는 추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그는 단호히 부인한다. “쉬우니까 선택한 진로지요. 가장 확률 높은 것만 치는 게 당구잖아요. 쇼맨십이냐는 질문이 많은데 절대로 아닙니다. 친구나 동생(선수)들이라면 (상대의 화려한 샷에) 잠시 흐트러질 수도 있겠지만, 나이 드신 클래스 있는 선수는 저~언혀 반응하지 않아요.”

다만 ‘조명우니까 쉽게 친 것’이란 점은 슬그머니 시인했다. 그는 “나는 강한 끌어치기나 밀어치기를 편하게 구사할 수 있게 훈련이 돼 있다”면서 “남들보다는 그런 기술에 익숙한 것 같다”고 말했다. 훈련이 됐다는 것을 전제로 맞힐 수 있다면 동호인, 일반인이 구사해도 좋은 진로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월드컵 국내 최다승자·한시즌 월드컵 3승 위업 동시 도전


본론보다 더 길었던 잡설을 접고 다시 월드컵 이야기로 전환했다. 12월 샤름엘셰이크 대회에서 우승한다면 월드컵 2연승이자 통산 4승이 된다. 현 시점 조명우와 김행직이 통산 3승으로 나란히 국내 다승 공동 1위이므로 한국 최다승자로 올라서게 된다.

놀라운 기록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2025년 한 시즌 동안 월드컵 3승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이는 2008년 ‘인간 줄자’ 딕 야스퍼스(네덜란드)가 달성한 이래 이래 17년 만의 대업적이다.

근 40년을 독재한 ‘황제’ 토브욘 블롬달(스웨덴)은 88년과 2007년 두 차례나 한해 월드컵 4승을 거뒀고 92, 93, 98, 2001년에는 각각 3승씩 거두는 비인간적인 실적을 남겼다. 하지만 기량 평준화가 완연해진 요즘 한 선수가 시즌을 통째로 지배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는 대기록에 도전하는 입장임에도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이겨도 기쁨이 오래가지 않고, 져도 슬픔이 오래가지 않아요. 나는 그런 스타일이에요.”

조명우는 “3년째 함께하고 있는 소속 서울시청과 실크로드, 띠오리, 허리우드 등 스폰서들의 지원에 늘 감사하다”며 “항상 올해보다 나은 내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올 11월 광주월드컵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번쩍 치켜든 조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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