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2000년대 록 리바이벌’ 대표 밴드…흥겨운 리듬과 단순한 멜로디로 세계적 인기
형식을 파괴하는 실험성, 난해한 구조에도 폭발적 대중 반응…‘철학적 댄스록’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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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는 포스트모던의 형식을 차용하되, 자유를 흩트리지 않은 채 이를 단단한 구조 안에 배치하며 해체를 혼란으로 소모하지 않고 쾌감으로 전환해냈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모던이 세계를 설명하려 했다면, 포스트모던은 그 세계를 다시 해체했다”
20세기 중엽, 예술은 더 이상 하나의 진리나 중심을 갖지 못하게 됐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한 이성과 진보의 시대를 약속했던 모더니즘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산업화의 그늘 아래에서 균열을 맞았다. 진보는 파괴를 향해 흘렀고 이성은 합리로 포장돼 더욱 강력한 힘을 얻은 비합리의 폭력을 막지 못했다. 예술 역시 ‘정답’을 말해주는 서사에서 멀어졌고 하나의 세계관으로 인간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힘을 잃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이 포스트모던이었다. 포스트모던은 하나의 중심을 의심하고, 모든 진리를 상대화하며, 서로 다른 감각과 서사를 동등하게 배치하는 데서 출발해 모던이 가지고 있던 ‘단일한 의미의 위계와 보편 진리라는 이름의 신화’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제 예술은 단일한 의미의 체계를 따르지 않아도 되었고, 정답을 말하는 대신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는 방식으로 자유를 얻었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서로 다른 장르와 스타일을 과감하게 섞는 실험도 가능해졌다. 과거에는 충돌로 여겨졌던 요소들이 포스트모던 안에서는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내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동시에 위험을 품고 있었다. 중심을 해체하는 일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지만 중심이 사라진 예술은 방향을 잃는다. 메시지가 없는 작품이 깊이를 가장하거나, 실험이라는 이름 아래 허용된 조잡함이 난해함으로 과대해석되는 사례도 넘쳐났다. 포스트모던의 자유는 해방을 주었지만 그 해방은 산만함, 공허함, 가벼운 유희로 변질 또는 과소비됐다.
이러한 약점은 대중음악에서 더 크게 드러났다.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고 혼종의 시대가 펼쳐졌지만 수많은 시도들이 단순한 패스티시(pastiche)로 흘렀다. 과거의 요소들을 차용하면서도 실상 새로운 것은 없는 음악, 파편을 나열하고도 구조적 긴장감이 없는 음악, 실험을 표방하지만 귀에 남지 않는 음악들. 포스트모던이 가진 형식의 해체는 종종 형식의 상실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복잡한 지점에서 정확하게 균형을 잡아낸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는 포스트모던의 형식을 차용하되, 자유를 흩트리지 않은 채 이를 단단한 구조 안에 배치하며 해체를 혼란으로 소모하지 않고 쾌감으로 전환해냈다. 이들의 음악은 전통적인 대중음악의 문법을 파괴하며 록의 폭발력과 댄스의 리듬을 다소 기이한 방식으로 뒤섞는 실험을 시도하면서도 대중적 상업성을 놓치지 않으며 음악적 완성도 또한 잃지 않는다.
포스트모던의 조각을 기하학으로 재배열하는 감각을 갖고 있는 프란츠 퍼디난드의 정수는 2004년 전 세계를 뒤흔든 ‘테이크 미 아웃’(Take Me Out)에서 드러난다. 전환과 파편, 중첩과 해체, 구조와 유희가 한 곡 안에서 폭발하는 동시에 단순하고 직관적인 쾌감을 주는 이 곡은 프란츠 퍼디난드를 세계적인 밴드로 도약시켰다.
You say, ‘You don’t know’
I say
‘TAKE ME OUT’”
(내가 말했지 “너 정말 몰라?”
너는 말하지 “너는 정말 몰라”
내가 말했어
“날 좀 꺼내줘”)
- 프란츠 퍼디난드 ‘테이크 미 아웃’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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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크 미 아웃’은 같은 도형을 다른 각도에서 회전시켜 보여주는 기하학적 구성에 가깝다. 이에 듣는 이는 구조의 급변을 ‘단절’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 묵직한 연속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다른 공간으로 넘어갔다’는 감각으로 곡을 수용하게 된다. 그리고 롤러코스터와 같은 이 뒤틀림에서 발생하는 짜릿한 카타르시스, 이것이 ‘테이크 미 아웃’을 세계적인 히트 곡으로 이끈 동력이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
“노래가 좀 이상한데…?” 하나의 노래 안에 두 가지 곡이 들어있는 이중 구조, 그런데 ‘훌륭하다’
‘테이크 미 아웃’을 처음 듣는 거의 모든 이들은 같은 지점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직선적인 기타 리프와 드럼이 이끄는 전형적인 2000년대 초반식 록 스타일로 잘만 흘러가던 노래가 0:35 즈음부터 어딘가 모르게 ‘세’하게 틀어지는 듯하더니 0:43 에서 노래는 예상하지 않았던 분위기로 굴러가기 시작하고, 0:55 구간에서는 돌연 박자도 리듬도 ‘이상한’ 노래가 됐다가 1:04 지점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노래가 돼버린다. 바닥이 내려앉듯 리듬은 반으로 꺾이고, 속도가 느려진 듯, 동시에 더 묵직하게 내리꽂히는 그루브의 등장. ‘앞’과 ‘뒤’가 서로 다른 시간대를 가진 채 평행으로 흘러가는 이 과감한 구조적 절단과 전환이야말로 프란츠 퍼디난드가 포스트모던의 형식을 록 음악 안에서 구현한 대표적인 지점이다.
통상적인 곡의 경우 초반부 리프와 전개가 곡 전체의 정체성을 먼저 규정하고, 이후 후렴과 브릿지로 확장되며 곡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테이크 미 아웃’은 초반부에서 이미 하나의 곡으로 완결될 수 있는 질감을 보여준 뒤 그 구조를 과감하게 버려버린다. 드럼의 체감 템포가 뚝 떨어지고 기타 리프는 다른 곡의 도입부처럼 재배치되는 형태는, 흔히 말하는 ‘후렴을 향한 상승’이 아닌 곡이 스스로를 끊고 다시 시작하는 ‘자기-중단’의 구조다. 즉 대중음악 한 곡의 표준인 ‘인트로(intro)→벌스(verse)→프리코러스(pre-chorus)→코러스(chorus)→클라이맥스(climax)’의 치고 올라가는 수직적 흐름이 아닌, 좌우로 흔들리는 수평적인 흐름, 평행 이동과 유사한 이러한 전개 방식은, 하나의 서사를 완성한 뒤 다른 서사를 겹쳐 올리는 포스트모던적 콜라주에 가깝다.
문제(?)는 이같이 기이한 구조를 가진 노래임에도 ‘너무 좋고 신난다’는 점인데, 이는 ‘테이크 미 아웃’이 난해한 구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리듬의 축(軸)을 절대로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전환부에서 박은 반으로 느려지지만 스네어의 위치는 변하지 않고, 드럼은 일정한 패턴으로 듣는 이에게 ‘기준선’을 박은 채 움직인다. 기타 리프 또한 초반과 후반이 완전히 다른 곡처럼 들리면서도 리듬 패턴의 형태에는 사실 아주 미묘하고 미세한 공유선이 있다. 표현하자면, 같은 도형을 다른 각도에서 회전시켜 보여주는 기하학적 구성에 가까운 구조다. 이에 듣는 이는 구조의 급변을 ‘단절’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 묵직한 연속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다른 공간으로 넘어갔다’는 감각으로 곡을 수용하게 된다. 그리고 롤러코스터와 같은 이 뒤틀림에서 발생하는 짜릿한 카타르시스, 이것이 ‘테이크 미 아웃’을 세계적인 히트 곡으로 이끈 동력이다.
Stalin smiles and Hitler laughs
Churchill claps Mao Tse-Tung on the back”
(어느 고요한 밤
스탈린은 미소 짓고, 히틀러는 웃어제끼고
처칠은 마오쩌둥의 등을 두드린다)
- 프란츠 퍼디난드 ‘워크 어웨이’(Walk Away)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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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록 리바이벌’ 밴드 중 하나답게 프란츠 퍼디난드 또한 이 시대 록 밴드들 특유의 ‘까리함’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사운드는 날카롭지만 과하게 거칠지 않고, 도시적이지만 차갑지 않으며, 듣는 순간 몸을 들썩이며 리듬을 타다 춤까지 추게 만들어 버리지만 결코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
포스트모던식 해체 혹은 ‘재배열’…정교하게, 세련되게, 그리고 ‘까리하게’
대부분 예술 작품의 실험적 구조는 ‘잘못 짜면’ 조잡하고 산만해진다. 그러나 ‘테이크 미 아웃’은 매우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와 구성의 결과물로써, 곡 전반에 동일하게 흐르는 리듬의 골격 자체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전환부 이전과 이후의 리프는 서로의 변주처럼 기능할 뿐 음향적 아이덴티티를 곡이 끝날 때까지 유지한다. 아울러 곡의 파편을 여기저기 늘어놓는 대신 전환점마다 듣는 이를 끌어당기는 강렬한 훅(hook)을 정교하게 배치했다. 덕분에 곡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면서도 난잡하지 않다. 오히려 해체된 파편들이 정확한 자리에 맞물려 들어가며 전형적인 댄스록이 주는 단순한 흥겨움 이상의 거대한 쾌감까지 형성한다. 포스트모던이 흔히 빠지는 ‘산만한 자유’가 아닌, 각 요소가 수학적이고 시각적인 감각으로 정렬된 자유에 가깝기에, ‘테이크 미 아웃’은 실험 곡인 동시에 구조물(construct)로서의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올라선다.
2000년대 ‘록 리바이벌’ 밴드 중 하나답게 프란츠 퍼디난드 또한 이 시대 록 밴드들 특유의 ‘까리함’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사운드는 날카롭지만 과하게 거칠지 않고, 도시적이지만 차갑지 않으며, 듣는 순간 몸을 들썩이며 리듬을 타다 춤까지 추게 만들어 버리지만 결코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이는 사운드 톤의 선택부터 리프의 각도, 드럼의 공간감까지 채워진, 복잡다단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미니멀하게 디자인된 세련된 감각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못 배기는 ‘테이크 미 아웃’의 후반부 기타 리프는 단순하지만 선이 뚜렷하게 살아있고, 베이스는 절제된 듯 들리지만 발판이 되는 리듬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즉흥적 질주가 아닌 정확한 타격으로 곡을 밀어붙이는 이들의 방식은 디스코나 펑크의 가벼움이 아닌 ‘쿨함’의 미학을 만든다. 이는 프란츠 퍼디난드 음악의 핵심이 단순한 ‘신남’이 아니라, 흥겨움을 매끈한 형태로 다루는 탁월한 감각 때문이다. 다시 말해, 프란츠 퍼디난드는 대중적인 동시에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또렷하게 갖고 있는 뮤지션이다.
이들이 가진 ‘쿨함’의 미학은 세련된 사운드나 구조적 영리함 외에 감정과 표현 사이에 두는 정확한 거리감에서도 비롯된다. 프란츠 퍼디난드는 열정적이면서도 감정을 과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신나는 리듬을 사용하면서도 기교적 과장이나 감정적 과열을 피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감정이나 감흥을 굳이 숨기지 않지만 특별히 드러내지도 않는 ‘절제된 태도’를 음악적 중심으로 삼는다. 이 태도는 곡의 모든 요소인 ▷짧고 명확한 리프 ▷사각사각한 기타 톤 ▷건조하게 툭 던지는 보컬 안에서 일관되게 유지된다. 이 절제된 태도는 프란츠 퍼디난드의 미학을 규정하는 핵심이자, 그들의 음악이 ‘가벼운 흥’과 분리되는 지점이다. 이들의 쿨함은 스타일인 동시에 태도이며, 그 태도는 이들이 음악을 사유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You must follow, leave this academic factory
You will find me in the matine, the dark of the matine”
(복도와 식당을 지나, 서류철이 가득한 방을 넘으며 나를 따라오렴
나를 따라와야 해, 이 학술의 공장을 떠나자
넌 나를 마티니 칵테일에서 찾게 될 거야, 마티니의 어둠 속에서)
– 프란츠 퍼디난드, ‘마티니의 어둠’(The Dark Of The Matine)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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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모던이 품고 있는 약점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가장 전방에 꺼내놓되, 그 약점을 모두 장점으로 뒤집어내는 방식으로 곡을 구성한다. 그래서 프란츠 퍼디난드의 음악은 자유롭고 분절적이지만 산만하지 않고, 장난스러운데 공허하지 않으며, 신나지만 천박하지 않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
“가사의 의미를 모르겠는데? 무슨 말인지 아시는 분?”…유머와 지성의 공존, 일단 춤은 췄는데 ‘어쩐지 심오하네’
프란츠 퍼디난드의 음악을 듣다 보면 우선 신나는 기타 리프와 절도 있는 드럼에 먼저 끌려 몸이 움직이지만, 오래지 않아 리듬의 웃음기 뒤에 숨어 있는 약간의 아이러니, 곡에 등장하는 요소들을 약간 비스듬한 각도로 비틀어 보는 감각이 직관적으로 감지된다. 이 ‘가볍지 않은 가벼움’이 바로 프란츠 퍼디난드를 다른 댄스록 밴드와 구분 짓는 출발점이다.
이들의 음악에는 감정의 직접적인 과열이 없다. 고음으로 질주하지 않는 것은 물론, 서정성을 과하게 끌어올리는 순간도 많지 않으며, ‘우리 지금 신난다’, ‘우리 지금 고독하다’는 등 청중에게 신호를 보내는 방식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그나마 ‘과잉’과 비슷한 감각의 구성이 있다면 훅이 되는 구절 혹은 리프를 반복시킴으로써 카타르시스의 밀도를 서서히 높여 압박해 터뜨리는 방식이지, 감정을 부풀려 정점을 찍고 난 뒤 여진을 요구하는 폭발 구조와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방식은 상당히 영리하다고 볼 수 있는데, 리듬과 구조 자체의 압력으로 쾌감을 밀어올려 곡의 에너지를 상승시키는 테크닉은 앞서 서술한 포스트모던의 취약점과도 연결된다. 서술했듯 포스트모던 예술이 흔히 빠지는 함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구조적 중심이 사라지며 산만해지는 것 ▷둘째, 형식적 실험이 내용의 공백(비어 있음)으로 이어지는 것 ▷셋째, 유희적 접근이 깊이를 소진시키는 것이다.
프란츠 퍼디난드는 이 세 가지 위험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단 한 번도 그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구조는 해체되지만 리듬의 축은 단단하게 유지되고(중심의 상실을 방지), 장난기 어린 비틀기와 전환이 이어지지만 곡의 정체성은 흐트러지지 않으며(내용의 공허함을 배제), 경쾌한 리프를 구사하면서도 음악이 가벼워지지 않는 묘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한다(유희와 진부화를 회피).
즉, 포스트모던이 품고 있는 약점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가장 전방에 꺼내놓되, 그 약점을 모두 장점으로 뒤집어내는 방식으로 곡을 구성한다. 그래서 프란츠 퍼디난드의 음악은 자유롭고 분절적이지만 산만하지 않고, 장난스러운데 공허하지 않으며, 신나지만 천박하지 않다.
So just carry on
And don‘t go blaming the neighbors, you know they’re the same as us”
(어차피 우리를 구원할 이는 없어
그저 계속 대담해지자구
주변인들을 탓하는 것도 그만둬
알고 있잖아? 그들도 우리와 다를 게 없어)
- 프란츠 퍼디난드 ‘대담해진다는 것’(Audacious)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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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곡은 머리로 설명하기 전에 먼저 몸으로 납득되는 구조를 갖는다. 그렇기에 프란츠 퍼디난드의 음악 앞에서 우리는 늘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 듣고, 움직이고, 그리고 조금 더 듣는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
프란츠 퍼디난드는 포스트모던의 자유를 흩어뜨리지 않고, 그 자유를 하나의 구조로 다시 묶어내는 드문 밴드다. 이들의 음악은 신나지만 단순하지 않고, 실험적이지만 난해하지 않으며, 장난스러운데도 유치하지 않다.
그들의 곡은 머리로 설명하기 전에 먼저 몸으로 납득되는 구조를 갖는다. 그렇기에 프란츠 퍼디난드의 음악 앞에서 우리는 늘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
듣고, 움직이고, 그리고 조금 더 듣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