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기준 2025년 결산부터 적용”
삼성생명, 계약자지분 자본 분류
유배당 표시·주석 공시 등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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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본사. [삼성생명 제공] |
금융당국이 삼성생명 등 생명보험회사에 적용하던 ‘일탈회계’ 처리 방식을 중단하기로 했다. 2022년 말 IFRS17 예외 적용을 허용한 지 3년 만이다. 국제회계기준(IFRS17) 원칙을 준수하겠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12조원이 넘는 계약자 지분을 자본으로 재분류할 방침이다. 별도 주석 공시를 통해 계약자 보호 장치도 마련한다. 이로써 삼성생명 회계처리 논란도 일단락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탈회계 중단…3년 지나 예외 두지 말아야”=금융감독원과 한국회계기준원은 1일 생명보험협회의 계약자지분조정 회계처리(일탈회계) 관련 질의회신 연석회의를 열고 이 같은 방침을 확정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생명보험사는 더 이상 일탈회계를 적용할 수 없다. 둘째, 새 기준은 2025년 결산부터 적용한다. 과거 제출한 결산 자체를 고치는 ‘소급 적용’은 아니다. 다만 2025년 결산에서 전년도 실적과 비교할 수 있도록 2023~2024년 재무제표도 새 기준으로 다시 작성해야 한다. 투자자들이 연도별 실적을 비교할 때 혼란이 없도록 하려는 조치다. 셋째, 과거 일탈회계 처리는 회계기준 위반이 아니다. 금감원은 “이번 결정은 회계정책 변경이지 오류 수정이 아니다”라며 “과거에 기준을 어긴 게 아니므로 감리 대상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위원회와 이견이 없다”고 강조했다. 과거 예외 허용이 잘못된 판단이었느냐는 질문에는 “그 당시에는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한 부분이 있고, 지금은 그런 필요성이 없다”며 “국제회계기준대로 돌아오는 과정”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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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유배당보험으로부터 시작된 논쟁=이번 결정의 배경은 1980~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생명은 유배당보험을 대거 판매했다. 유배당보험은 보험사가 투자로 얻은 이익 일부를 계약자에게 배당하는 상품이다. 삼성생명은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로 삼성전자 지분 8.51%를 사들였다.
2023년 IFRS17이 도입되면서 이 계약자 몫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IFRS17은 ‘현재 존재하는 의무’만 부채로 인식한다. 보험사가 “주식을 팔 계획이 없다”고 하면, 매각 이익이 생기지 않으니 계약자에게 줄 의무도 ‘현재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수조원에 달하는 계약자 몫이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돼, 보험부채가 오히려 과소 표시되는 문제가 생긴다.
금감원은 2022년 말 이런 점을 고려해 예외를 허용했다.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별도 부채 항목을 만들어 계약자 몫을 표시하도록 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일탈회계’라고 불렀다.
3년간 유지되던 일탈회계에 다시 불이 붙은 건 올해 2월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일부(약 2364억원)를 매각하면서다.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소각해 삼성생명 보유 지분율이 금융산업구조개선법상 한도(10%)를 넘어선 것이 계기였다. “주식을 팔 계획이 없다”던 전제에 변수가 생긴 것이다.
이 원장은 취임 이후 “국제회계기준에 맞게 정상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회계기준원에서도 “일탈은 극히 드문 상황에만 적용해야 하며, 기업 필요나 경영자 판단에 좌우돼선 안 된다”는 의견을 유지했다.
▶내 배당 사라지나…당국 “법적 권리 그대로”=삼성생명은 일탈회계가 중단되면 현재 12조8000억원(9월 말 기준)의 계약자지분조정을 자본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주식의 구체적인 매각 계획을 세울 수 없어 보험부채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채냐, 자본이냐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현행처럼 부채(계약자지분조정)로 처리하면 “계약자에게 줘야 할 돈”이 재무제표에 명시된다. 계약자는 자기 몫이 얼마인지 확인할 수 있고, 배당을 요구할 근거도 분명하다.
반면 자본으로 분류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12조원대의 계약자 몫이 기타포괄손익누계액에 합쳐져 재무제표 본문에서 따로 드러나지 않는다. 회계상으로는 “회사 자산 가치가 늘었다”는 의미가 되는 셈이다. 삼성생명 자본금이 40조9000억원에서 50조원대로 약 20% 불어난 것처럼 보이는 착시도 생긴다.
이 때문에 부채에서 자본으로 분류가 바뀌면 계약자의 배당 청구권이 법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금감원은 이런 우려를 고려해 보완책을 내놨다. 유배당보험을 다른 보험계약과 구분해 재무제표에 표시하고, 보험업 법규 요구사항과 금리 변동 위험 영향 등을 주석에 충실히 공시하도록 했다. 금감원은 “회계상 표시가 변경되더라도 계약자 보호에 미칠 영향은 없다”고 설명했다. 배당은 보험업법 등 관련 법규에 따라 실현이익이 발생할 때 지급하는 것이라 회계 분류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삼성생명도 금융당국의 소비자 보호 방침에 따라 자본 항목에 주석을 붙여 계약자 몫을 표기하거나, 당국에서 지시하는 사항을 차례대로 이행해나간다는계획이다.
한편 이번 회계 분류 변경이 삼성생명의 건전성 지표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 핵심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K-ICS·킥스) 비율 산정 시에는 계약자에게 돌려줄 몫을 가용자본에서 빼기 때문에, 회계상 자본이 늘어나도 실제 건전성 수치는 그대로 유지된다.
박성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