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끝 보여주겠다” 딸 수능 부정행위 적발 감독관 협박한 아버지 집행유예 나왔다 [세상&]

명예훼손·협박 혐의
1심 징역 6개월 실형→2심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감형
피해자 측에 총 4000만원 지급한 점 고려


사진은 참고용 이미지. [연합]


“저는 어제 (수능) 시험쳤던 학생의 학부모이자 대리인 변호사입니다. 한 번 해봅시다. 남의 인생 망가뜨렸으니까 인생 같이 망가뜨립시다. 우리는 끝까지 갈거야.”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지난 2023년 11월 17일, 2024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진 다음날. 서울 양천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변호사 A씨가 1인 시위를 했다. 시위 대상은 전날 A씨 자녀의 부정행위를 적발한 시험감독관이자 교사였다. A씨는 부정행위 적발을 취소시키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

변호사인 A씨가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A씨에겐 1인 시위 당시 허위사실을 유포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와 피해자를 협박한 혐의가 적용됐다.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딸 부정행위 적발되자…다음날 1인 시위, 감독관 협박


사건은 2024년도 수능 시험이 치러졌을 때 발생했다. 당시 A씨 딸의 부정 행위가 적발되면서 해당 연도 시험이 무효가 됐다. 집으로 돌아온 A씨 딸은 어머니에게 시험감독관의 이름을 알려줬다. 명찰을 본 기억이 남아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A씨는 딸과 인터넷을 검색해 시험감독관의 근무지를 알아냈다.

A씨는 딸의 부정행위 적발을 취소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시험감독관에게 항의하고 겁을 주기로 했다. 곧바로 다음 날 오전 8시 30분께 교육청 정문 앞에서 허위 사실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종이판자에 피해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파면, 지각 공무원, 직무유기죄, 주정차 위반’이라고 적었다.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씨는 1인 시위를 마친 뒤 이번엔 곧바로 피해자가 근무 중인 중학교로 이동했다. 정문 앞에서 학교지킴이실 담당자가 막아섰지만 그는 피해자를 면담하러 온 학부모인 것처럼 자신을 거짓 소개했다. 담당자가 확인을 위해 피해자와 통화를 연결해주자 A씨는 협박을 시작했다.

그는 “저는 어제 (수능) 시험쳤던 학생의 학부모이자 대리인 변호사”라며 “여기서 매일 1인 시위할테니 알아서 해라”고 말했다. 이어 “인생의 끝을 보여주겠다”며 “남의 인생을 망가뜨렸으니까 인생을 같이 망가뜨리게 당신이 합법적으로 잘 사는지 확인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끝까지 갈 거야”라며 “본인의 판단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보자. 인생을 한 번 끝가지 가보자. 재밌게 살아보자”라고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내용을 전달했다.

1심 징역 6개월 실형


명예훼손·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1심은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1심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노태헌 판사는 지난 1월, 이같이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자녀의 부정행위가 적발됐다는 이유로 정당한 시험 감독행위를 한 피해자를 압박했다”며 “추후 자백하긴 했지만 1차 공판 기일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자백했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없는 점, 피해자에게 1000만원을 공탁했다”는 점을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했다.

2심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


법원 [헤럴드경제DB]


2심에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이 이뤄졌다.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자, A씨가 피해자에게 추가로 3000만원을 지급하고 합의한 점이 참작됐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2심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2-3형사부(부장 장성훈)은 최근 A씨에게 집행유예로 감형을 택했다.

2심 재판부도 “피고인(A씨)은 경찰관 경력을 가진 채 사법시험을 합격한 뒤 경찰학원에서 형사법 강사로 활동하는 등 법률에 대한 전문성이 있다”며 “그럼에도 정당한 절차에 따른 해결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해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방식으로 부정행위 적발을 취소시키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현재 늦게나마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다”며 “원심(1심)에서 1000만원을 공탁했고, 당심(2심)에서 피해자와 합의해 3000만원을 지급했다”는 점을 유리한 사정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수능 당일 딸과 딸의 어머니에게 들은 정보에만 근거해 흥분한 나머지 범행에 이른 측면도 다소 있다”고 했다.

법원은 “여러 사정을 고려하면 1심의 형량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는 점이 인정된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현재 이 판결은 확정됐다. 2심 판결에 대해 A씨와 검사 모두 “대법원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불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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